[시골 꽃 이야기] 복스럽고 덕이 있는 미인 같은 모란
[시골 꽃 이야기] 복스럽고 덕이 있는 미인 같은 모란
  • 장성희 기자
  • 승인 2022.05.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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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만큼 큰 얼굴을 드러내다

라일락이 농후한 향기를 흘리고 떠난 허전함을 보름달 같은 모란이 화들짝 피어 달래준다. 초록색 잎 사이로 가지마다 옹골찬 꽃봉오리를 하나씩 달고 나오더니 쟁반만큼 크게 하양, 자줏빛으로 마당을 물들여 놓았다. 작년보다 더 풍성하고 탐스럽게 피운 것 같다. 뒤늦게 나온 분홍 모란도 봉오리를 막 터뜨리고 있다. 우리는 자꾸만 늙어 가는데 모란은 해마다 더 아름답게 피어난다. 여덟 개의 붉은 꽃잎은 노란 꽃술에 대비되어 한 송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샛노란 꽃술이 꽉 찬 보름달 마냥 소리 없이 활짝 웃어댄다. 하양, 빨강, 노랑, 자주 등 다양한 색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 중에 자줏빛이 가장 화려하고 매혹적이 않나 싶다. 하얀 모란은 청아함 자체로 시선을 끈다. 세상만사 시름을 끊고 자신을 보며 웃으라고 하얀 미소를 날린다.

쟁반만큼 큰 얼굴의 모란. 장성희 기자
쟁반만큼 큰 얼굴의 모란. 장성희 기자

그런데 모란은 피기 직전이 더 예쁘다고 한다. 막 피어나려는 생기발랄한 아가씨의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꽃이 활짝 핀 모습도 참 좋다. 삶의 모든 모습을 드러내 보여도 부끄러울 게 없는 중년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모란은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선물한 이야기로 인해 향기가 없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코를 대면 달콤한 향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샛노란 꽃술에 벌들이 궁둥이를 치켜들고 달려들기도 한다.

하얀 미소를 날리는 모란. 장성희 기자

군더더기가 없이 시원하고 깔끔해서 모란이 참 좋다. 그래서 여러 색을 이곳저곳에 심어 놓았다. 모란은 복스럽고 덕이 있는 미인에게 비유하기도 하고 얼굴이 반듯한 여인을 일컫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마 크고 넓은 꽃 모양 때문이 아닐까. 모란의 이런 모습 때문이었는지 예로부터 부귀영화를 상징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왕비나 공주처럼 귀한 신분의 여인들은 옷에 모란 무늬를 넣어 입었다고 한다. 부귀영화는 상류층만 꿈꾸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소망하는 것이기에 서민들도 한두 폭의 모란 병풍을 가정에 두고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에 깊게 자리 잡은 꽃 중의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 피어나고 있는 분홍 모란. 장성희 기자
막 피어나고 있는 분홍 모란. 장성희 기자

모란이 피면 온 세상은 활기찬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낮 기온이 올라가고 나무는 잎을 초록색으로 바꾼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위를 느끼게 된다. 모란이 지기 시작하면 봄은 떠나가고 우리들은 작열하는 여름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 두 달 넘게 온갖 봄꽃들이 피었다가 졌다. 이제 모란이 뚝뚝 떨어지면 봄과의 아쉬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세상사 모든 게 오면 가게 되고, 꽃은 피면 지고 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지만, 큰 모란꽃이 떨어지면 인생살이가 왠지 허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모란을 사랑한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 까지는>에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라는 구절이 있다. 학창시절 공부할 때에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으니 봄을 보내는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모란은 화사하고 고운 품격을 잃지 않는 꽃이지만 우리네 청춘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느리게 피었다가 천천히 져도 좋으련만 어쩌자고 달리는 세월만큼 빨리 피고 서둘러 가는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니 인생은 일장춘몽인 것 같다. 이제하 시인이 쓰고 조영남씨가 부른 '모란동백,이라는 노래가 오늘따라 가슴 뭉클하게 와 닿는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모란꽃이 진 자리. 장성희 기자
모란꽃이 진 자리. 장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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