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꽃 이야기] 단순하면서도 순결한 꽃 '눈꽃'
[시골 꽃 이야기] 단순하면서도 순결한 꽃 '눈꽃'
  • 장성희 기자
  • 승인 2022.03.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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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월에 '눈꽃'을 만나다

시골에서 가끔 내리는 눈은 도시에서 살 때에는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 놓는다. 때는 춘삼월이라 꽃봉오리들이 살포시 꽃잎을 내밀다가 움츠리게도 한다.

새벽부터 눈이 내리더니 산과 들이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되었다. 어제의 회색빛 풍경은 사라지고 오로지 희고 깨끗한 순백의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앙상한 가지 위에도, 차가운 땅 위에도 소복소복 하얀 눈을 쌓아 놓았다.

탐스럽게 핀 눈꽃. 장성희 기자
탐스럽게 핀 눈꽃. 장성희 기자

눈이 내리는 날에는 시골아줌마의 가슴도 강아지처럼 설렌다. 눈이 펑펑 내리는 모습을 방 안에서만 보기 아까워 방한복을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앉을 곳을 가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수천수만의 아름다운 눈꽃송이가 하늘과 땅 사이를 메우며 끝없이 내린다. 눈꽃송이가 들판에 앉으면 눈밭이 되고, 산에 앉으면 설산이 된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앉으면 눈꽃이 된다. 새삼 눈앞의 황홀경에 환상의 나락에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눈꽃송이는 소리 없이 내려서 나뭇가지를 장식한다.

앙상한 가지를 장식한 눈꽃. 장성희 기자
앙상한 가지를 장식한 눈꽃. 장성희 기자

눈꽃은 잠시 나뭇가지를 빌려 꽃으로 대접을 받는데 불과 하지만 꽃의 가면을 쓰고 있는 조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오로지 설국에서 하얗게 피어날 줄밖에 모른다. 오직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꽃이다. 세익스피어는 장미는 장미라 부르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했다. 눈꽃도 마찬가지다. 꽃이라고 불러주지 않아도 단순하면서도 순결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깨끗한 눈밭을 걸었다. 발밑에서 들려오는 뽀드득 소리도 경쾌하다. 잠깐씩 뒤돌아보며 눈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을 확인해 본다. 문득 서산대사의 시이지만 김구선생이 인용하여 잘 알려진 '답설야중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눈길을 걸어 갈 때에 어지럽게 걷지 않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지금까지는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제대로 길을 걷는 것인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눈 위의 발자국. 장성희 기자
눈 위의 발자국. 장성희 기자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는 눈꽃이 탄생했다가 사라지곤 한다. 오늘 만들어진 눈꽃은 오래지 않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눈꽃뿐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 모습도 언젠가 한 줄기 햇살에 녹아 사라지는 눈꽃처럼 그렇게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이다. 비록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일지라도 시골아줌마는 매년 눈 오는 날에는 눈꽃을 기다린다. 그 이유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추억이 가슴속에 담겨지기 때문이다.

잠깐 피었다가 지고 있는 눈꽃. 장성희 기자
잠깐 피었다가 지고 있는 눈꽃. 장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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