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간호사, 안나푸르나 트레킹 경력의 '푸른실버타운' 박윤희 원장
소록도 간호사, 안나푸르나 트레킹 경력의 '푸른실버타운' 박윤희 원장
  • 최종식 기자
  • 승인 2021.12.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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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선서를 실천하는 백의의 천사
고등학교 교사에서 소록도 한센병 간호사로
푸른실버타운 요양원 원장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킬리만자로 트레킹
박윤희 원장의 집무 광경. 최종식 기자
박윤희 원장의 집무 광경. 최종식 기자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간호 학도들이 2년간의 기초 간호학 수업을 마치고 임상 실습을 나가기 전에 촛불을 들고 가운을 착용한 채 거행하는 나이팅게일 선서의 첫 문장이다.

아리따운 처녀시절, 나이팅게일 선서를 몸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안정된 고등학교 보건교사직을 과감히 내려놓고 한센병 환자들의 집단거주지인 소록도로 떠난 백의의 천사가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 소재 푸른실버타운 박윤희 원장(65)이다. 강직한 인상을 기대했는데 막상 박 원장을 만나보니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의외로 다정다감하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기자를 맞아주는 광경은 천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외유내강이란 바로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박윤희 원장과 만나 꽃다운 처녀 시절 간호사로부터 요양원장까지 간호인으로 살아온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간호사란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실까요?

▶꿈 많던 여고 시절이 생각납니다. 책으로 접한 적도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 이야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이야기는 톡톡 튀는 소녀의 가슴에 불같은 욕망을 심어주었지요.

한평생을 밋밋하게 살기 보다는 무언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백의의 천사는 나의 로망이었고 간호사의 하얀 유니폼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 소록도병원에서 근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안정된 고등학교 보건교사에서 남들이 무서워 하는 먼먼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국립소록도병원 간호사로 변신하기까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소록도로 자원한 동기를 한번 들어 볼까요?

▶ 당시 경북체육중고등학교에 양호교사로 근무했어요. 그 전에 병원에 근무하다 뜻하는 바가 있어 학교로 옮겼는데 생각보다 학교 근무가 간호사로서의 역할이 적었어요.

요즘은 보건교사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양호교사는 할 일이 국한되어 있어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요. 교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가 싫었던 차에 소록도에서 간호사 채용 공고가 있었어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할 때 하나님께 약속한 말이 생각나서 얼른 지원을 했는데 합격이 되었어요. 얼떨결에 소록도로 가게 되었답니다.

- 한센병의 징후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 네, 처음에는 참 무서웠어요. 한센병은 나병, 문둥병이라고도 하지요. 한센균에 대한 면역 상태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개 피부병변, 말초신경(비후 및 통증), 한센균의 존재라는 3대 징후가 관찰됩니다.

감각의 저하, 피부반점, 구진, 결절, 신경손상, 눈썹 소실, 손발의 감각 소실, 토안, 실명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나며 치료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다양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이 잘려 나가도, 코끝이 떨어져 나가도 아픈 줄 모르니 심각하죠. 남이 봐서는 참 흉측한 병입니다.

- 얼굴이 예뻐서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근무하실 때 인기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나 가슴 뿌듯한 이야기들을 좀 들려주실까요?

▶네, 민망합니다만 제 자랑 좀 하겠습니다. 간호사가 몇 명 있었는데 제가 제일 예뻤던가 봐요. 나이도 어리고 그래서인지 환자들로부터 인기가 있었어요.

환자들이 조그만 일이 생겨도 ‘박 간호사’를 찾았어요. 모두가 고향을 떠나 불쌍한 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숭고한 일을 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인데 차별을 받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다른 간호사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환자들에게 사적으로 복음송 찬양집도 구매 해 드리고, 율동도 가르쳐 드리고 이발도 해 드리니 모두들 엄청 좋아하셨답니다. 그 때의 일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 소록도병원에서는 몇 년간 근무하셨나요?  다시 육지로 돌아오게 된 연유와 그 후의 삶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1년 6개월 동안 정말 보람있게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레 저희 어머니께서 지금의 남편인 김선생님을 데리고 오셨어요. 제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걱정이 된 것이죠.

막무가내로 결혼을 밀어붙였습니다. 물론 대학생 선교회에서 잘 아는 사이지만 불편한 몸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놀랍기도 했어요.

한센병 환자를 두고 떠나기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동료들에게 맡겨 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후로 간호일을 잠시 접어 두고 다른 일을 하며 고생도 많았지만 결국 저의 천직으로 돌아왔습니다. 

- 최근 몇 년 전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다녀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녀시절 소록도로 과감하게 떠났던 사실과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안나푸르나까지 다녀오셨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일인데요.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뚝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요? 두 가지 사실에 대하여 원장님의 소회를 한번 들어볼까요?

▶이 모두가 열정입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남다르고 계획하면 밀고 나가는 욕구가 있습니다. 남들이 어려워할 때 소록도에서 체험을 했고 살아가면서 그때의 경험이 삶의 주춧돌이 된 것 같습니다.

세계 명산을 트레킹하는 것은 젊을 때 못 다한 ‘한’이 되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남편 때문에 못 간다가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려놓기 싫어서 이만큼이라도 건강할 때 여러 명산을 탐험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에 대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년에 공익사업인 전문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하시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 사업은 언제부터 하셨으며 운영 동기, 타 요양시설과 차별화된 시설 및 프로그램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리가 복지사업을 시작할 때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제게 소명을 주신 것으로 알고 땀 흘려 모은 재산을 복지 사업에 몽땅 투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 푸른실버타운은 대구에서 유일하게 전문요양실을 운영합니다. 간호사 6명이 3교대로 근무하며 어르신을 전문적으로 돌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소 어르신들께 먹는 즐거움을 드리고자 반찬과 간식에 특히 신경 쓰며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올해는 관계 기관으로부터 최우수 등급으로 지정받아 모든 직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장시간 취재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영하시는 사업이 계속하여 번창하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원장님의 앞으로의 계획과 각오를 들어보겠습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만난 어르신의 남은 여생이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람은 없습니다. 평안하게 지내다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기쁨으로 운명하도록 도우겠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앞으로 넓은 토지를 구입하여 지금보더 더 좋은 시설을 갖추고 싶습니다. 푸른 잔디가 있고 아름다운 꽃들이 사철 피고 지는 넓은 마당을 치매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거닐도록 하고 싶습니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느님께 약속한 꿈많은 예비 간호사의 야무진 모습이 연상된다. 젊은 시절에 누구나 한번 쯤 원대한 꿈을 가지게 된다.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 시절 고등학교 교사에서 소록도 한센병 환자 곁으로 단걸음에 달려간 백의의 천사 박윤희 원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평생을 소외된 환자들 곁에서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준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의 환자를 향한 강직한 신념 때문이 아닐까.

사회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어두움을 밝히는 그의 선행이 오직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종이 되었으면 한다.

거리에 땡그렁 땡그렁 울리는 자선 남비 종소리가 오늘 따라 더욱 정겹다. 

환자를 정성껏 돌보는 박윤희 원장의 모습. 최종식 기자
환자를 정성껏 돌보는 박윤희 원장의 모습. 최종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