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단상(斷想)
요양원 단상(斷想)
  • 배소일 기자
  • 승인 2021.08.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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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저 죽을 뿐, 내생도 없고 영혼도 없다. 여생을 즐겨라

요양병원, 요양원은 늙고 병들어가는 우리들의 미래다. 수많은 노인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의미 없는 삶을 연명하며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여기서 보내고 있다. 그들도 그리될 줄은 몰랐을 것이고 지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남의 이야기로 알았지만,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자식 여럿 두었으면 무엇하며, 그 자식 유명인사 된들 무엇하겠는가! 이 한 몸 기댈 곳 없이 흘러 흘러 와서 호흡기 달고서야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 애지중지 처자식이 누군지도 못 알아보게 되더라. 유일한 낙이라고는 천진난만하게도 하루 세끼 밥과 간식이 전부더라.

요양병원에 가서 서 있는 가족의 위치를 보면 촌수가 훤히 보인다. 장기입원하고 있는 부모를 이따금 찾아와서 침대 옆에 바싹 붙어 눈물 흘리면서 준비해 온 죽을 떠먹이며 이것저것 챙기는 자식은 그래도 딸이다. 그 옆에 멀쩜 서 있는 남자는 사위, 문간에서 먼 산 보고 있는 사내는 보나 마나 아들이고 복도에서 휴대폰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자는 며느리다. 무심한 아들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누가 사다 놓은 음료수 하나 따먹고 이내 사라진다.

우리 장손! 내 아들! 금지옥엽으로 키운 벌을 여기서 받는 거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딸아이 대학교육까지 포기하며 출세시킨 아들이다. 사업한답시고 은행 대출 보증까지 섰고 공무원 30년 연금까지 기꺼이 내준 당신의 희생을 헌신짝으로 버린 저 못난 아들놈을 어찌해야 하나!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요양원에 온 지 아직 두 달도 안 지났다. 건강과 재산 등 노후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몽땅 줘버린 헌신이 곧바로 고통이요 고문이 될지는 꿈에도 없었을 것이다. 아직은 건강하신 노인분께 당부드린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다. 가진 돈이 있거든 당신을 위해 다 써라.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곳 가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세월 보내는 것이 최선의 여생이고 최고의 행복이니까.

죽으면 말 길이 끊어져서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인지할 수도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내생이 어디 있으며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돈 들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 남기지 말고 가자, 빌린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퇴계 선생은 죽음이 임박하자 이런 시문을 남겼다.

"조화를 따라서 사라짐이여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