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실(齋室)이야기]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 용호재(龍湖齋)
[재실(齋室)이야기]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 용호재(龍湖齋)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1.04.15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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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문경호가 지금의 광거당 자리에 건립
조선 후기 전통가옥 9채와 정자 2채 남아
광거당. 박미정 기자
용호재 광거당. 박미정 기자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巨地)는 19세기 중반 18대손 인산재 문경호(仁山齋 文敬鎬,1812-1874)가 지금의 광거당(廣居堂) 자리에 용호재(龍湖齋)를 건립하면서 문씨 일족이 모여 살던 곳이다. 당시 남평 문씨들은 50여 만평의 토지와 만석꾼에 가까운 막강한 부를 쌓아 올렸으며, 원래 절이 있는 명당터를 구획하여 집을 지었다. 지금은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9채와 정자 2채가 남아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수봉정사(壽峰精舍)와 광거당(廣居堂), 인수문고(仁壽文庫)를 들 수 있다.

수백당. 박미정 기자
용호재 수백당. 박미정 기자
남평문세거지 전경. 박미정 기자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 용호재의 전경. 박미정 기자

 

13일 독립운동가였던 수봉(壽峰) 문영박 선생의 손자인 중곡(中谷) 문태갑(91)씨를 만났다. 전 서울신문 사장을 역임한 문태갑 씨는 1998년 낙향해 20여 년째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수봉정사는 1936년 수봉 문영박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고 후손들의 교육을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주로 손님을 맞고 일족의 모임을 열 때 사용되었다. 광거당은 1873년 후은공(後隱公)과 문성공(文成公)이 중국 서적 수천권을 수집하여 세웠으며, 문종 자제들이 학문과 교양을 쌓던 장소이다. 또한 문중의 서고인 인수문고는 규정각 도서를 포함한 2만여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 서원 가운데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소규모였으나 점차적으로 크게 늘려 지었다. 

(중곡)문태갑 씨. 박미정 기자
서울신문 사장을 역임한 중곡 문태갑 씨. 박미정 기자
인수문고 서적을 설명하고 있는 (우)재실총무 문희목 씨.
인수문고 서적을 설명하고 있는 재실 총무 문희목 씨(오른쪽). 박미정기자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는 조선시대 말에 지은 아홉 채의 전통 한옥과 정자 두 채 등 총 11호 54동의 건물이 있다. 마을의 조성시기와 규모 및 형태면에서 차별화된다. 문중의 정신적 유산을 담아온 정통건물의 정형성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주거공간의 근대적 변용 현상과 신앙, 위례, 생활도구 등을 살펴보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지금은 최소 규모의 씨족마을로 집안 아홉 대소가(大小家)만으로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수고 해 주신 송대섭 해설사와도 한 컷. 박미정 기자
취재를 마치고 수고해 주신 송대섭 해설사와도 한 컷. 박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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