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실(齋室) 이야기] 달성 배씨 성담문중 원모재(遠慕齋)
[재실(齋室) 이야기] 달성 배씨 성담문중 원모재(遠慕齋)
  • 김병두 기자
  • 승인 2021.04.23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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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절한 배언 율현공을 모신 달성 배씨의 재실 원모재를 찾아서
원모재롤 들어가는 대문인 추모문   김병두 기자
원모재 들어가는 대문 추모문. 김병두 기자

원모재는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로21길 41(읍내동 1090번지)에 위치한 달성 배씨 판서공파 성담문중의 재실이다. 입구에는 구천서당(龜川書堂)간판이 걸려있고, 입구 오른쪽 언덕에는 고려 후기 무신 배정지(裵廷芝) 자는 서한(瑞漢), 호(號)는 금헌(琴軒)을 기리는 '고려국밀직사금헌달성배공신도(高麗國密直使琴軒達城裵公神道)'라고 새겨진 신도비(神道碑)가 서있다.

구천서당 간판  김병두 기자
구천서당 간판. 김병두 기자
고려 무신 금헌 배정지 장군 신도비  김병두 기자
고려 무신 금헌 배정지 장군 신도비. 김병두 기자

입구에 들어서면 출입문인 추모문(追慕門)이 보인다, 추모문을 들어서면 한일자 네 칸의 홑처마로 건축된 재실 원모재가 있다. 마당에는 1999년 대구시 보호수로 지정된 500여 년 된 조손(組孫) 팽나무 두 주가 우뚝 서 있고, 팔각정 정자 월영정이 있다. 서쪽의 작은 신도문(柛道門)을 지나면 사당 숭덕묘(崇德廟)가 있다. 숭덕묘의 중앙에는 휘(諱)는 언(彦) 호(號)는 율현공 병조판서, 왼편에는 휘는 집 호는 동고공 성균진사, 오른편에는 휘는 이훈 호는 성담공(聖潭公)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삼위를 배향(配享)하고 있다.

재실 원모재  김병두 기자
재실 원모재. 김병두 기자
재실 원모재 현판  김병두 기자
재실 원모재 현판. 김병두 기자
조손 팽나무와 월영정   김병두 기자
조손 팽나무와 월영정. 김병두 기자
율현공, 동고공, 성담공을 모신 사당 숭덕묘  김병두 기자
율현공, 동고공, 성담공을 모신 사당 숭덕묘. 김병두 기자

달성 배씨 성담문중의 입항조인 성담공부터 외동으로 내려오다가 휘는 상지 호는 국헌공(菊軒公)이 아들 사형제를 낳으니, 첫째 원진(元袗), 둘째 용진(用袗), 셋째 명진(明袗). 넷째 시진(時袗)이다. 시진의 호는 금곡당(琴谷堂) 즉 백중숙계씨(伯仲叔季氏)이다, 성담문중에서는 큰집을 백파(伯派), 둘째를 중파(仲派), 셋째를 숙파(叔派), 넷째를 계파(季派)라 한다. 달성 배씨 판서공파의 주손(冑孫)들이 달성 배씨 판서공파 성담문중이다.

담 너머 서북쪽에는 1995년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200여평에 조성한 석물(石物)을 모두 갖춘 경주 배씨 달성파 수관조 설단(慶州 裵氏 達成派 受貫祖 設壇)이 자리잡고 있다. 경주 배씨 6파중 전국의 달성 배씨 10만여 명의 후손들의 집결지로 매년 5월 1일을 시제일로 정하여 300여 명이 모여 참배하고 있다.

경주배씨달성파수관조설단  김병두 기자
경주 배씨 달성파 수관조 설단. 김병두 기자

배씨의 득성시조(得姓始組)는 신라 건국 전 6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문양공 배지타공(裵祗沱公)이다. 중시조에 고려개국공신 무열공 태사 배현경공(裵玄慶公)을 일시조로 하여, 육세조 달성군의 후손 13세손 밀직부사통헌대부(密直副使通憲大夫) 금헌공(琴軒公) 배정지의 손자인 16세손 광유공(光裕公)의 삼자 중 이자가 병조판서 배언 율현공이다. 율현공의 손자 19세손 4형제 중 맏이인 휘는 집, 호는 동고공이 세조 왕위 쟁탈전에 연류되어 동생 진, 신, 회 세 사람은 호남으로 도피시키고, 동고공은 생육신들과 교류하면서 후학을 가르치고, 장자 계권, 이자 유권, 삼자 숭권, 사자 계전을 두다. 20세 계권의 장자 수손공이 장자 이훈(以纁), 이자 문손(文孫)을 두다. 22세손 이훈의 호가 성담(聖潭)으로 1570년 (선조 3년) 선교량 현능참봉 사현부집의에 천거되고 의성현령이 되다. 성담공은 관리에서 퇴임하여 읍내동 칠성산(七聖山)에 기거하면서 후학들을 교육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니, 주변 사람들이 “책속에 묻혀 사는 선비”라고 칭송하였으며, 월계 조목선생을 비롯한 여러 현인들과 도의교우(道義交友)하였다.

배언 율현공의 부 관군천호 광유공(官軍千戶 光裕公)과 조부 성경공(成慶公) 통판예문하사(通判禮問下事)는 황건적과 경기도 과천 백화사에서 전투중 순절하였다. 배언 율현공은 1377년 함경북도 화령부윤으로 재직하다 밀직부사가 되어, 우왕 6년 1380년(우왕 6년) 8월경에 왜구가 쳐들어와 영동, 옥천, 상주, 성주 등에서 민가에 방화 약탈을 하자 고려군사 총사령관 도원수 배극렴이하 원수 8명 중 배은, 박수경과 함양감무 장군철 군사 500여 명이 경남 함양 수동면 원평리 연화산 사근산성에서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 군사 600여명과 싸우다가 중과부족으로 전멸하고 배언 율현공도 순절하니 삼대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절하였다.

재실에 대한 안내와 설명을 해준 달성 배씨 판서공파 대구 성담문중 배상영 고문은 “조상들의 유택, 사당, 설단이 오백년 이상 보존되어 가문이 번창하여 왔는데, 대구시 공원조성부지에 편입되어 이전하게 되어 안타깝다”고 했다. 구천서당을 열고 후학을 가르치던 원모재 맞은편에 대천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으니, 구천 서당의 정신이 후세까지 이어온 것은 아닐까.

※ 참고 : 휘(諱) : 죽은 어른의 생전 이름, 호(號) : 본명이나 자 이외에 쓰는 이름, 세상에 널리 드러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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