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실(齋室) 이야기] 대구 수성구 일직 손씨 재실 송독재
[재실(齋室) 이야기] 대구 수성구 일직 손씨 재실 송독재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1.04.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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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탄 손린 선생
우로부터 손중서(전 수성구의회 의장). 손양직(종친회 회장). 손중괴(재실 관리)손수길(종친회 총무)
우로부터 손중서(전 수성구의회 의장), 손양직(종친회 회장), 손중괴(재실 관리),손수길(종친회 총무)

일직 손씨 재실 송독재와 봉산서원은 대구시 수성구 수성로12길 70(상동)에 있다. 대지 약 180평에 동서에 방이 있으며 가운데 4칸은 강당이다. 상당에는 봉산서원(鳳山書院)과 지행당(砥行堂)이 편액 되어 있다. 강당의 남동쪽에 봉암사(鳳巖祠)가 있으며 서쪽에는 송독재(誦讀齋)가 있다. 정문은 지행문(砥行門)이고 문을 들어서면 문탄 손선생 유허비가 있다.

문탄 손선생 유허비
문탄 손선생 유허비. 

 

본당 주련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걸려있다.

일가화수돈윤(一家花樹敦倫 ) 한 가문의 화목이 돈독하고 질서가 있으니

현송사시유문(絃誦四時有聞) 거문고 소리 글 읽는 소리 사계절에 들리네

양세갱장우모(兩世羹墻寓慕) 두 대에 걸쳐 제향을 드리고 사모하였네

조모자이백운(朝暮自怡白雲) 아침저녁으로 흰 구름 바라보고 스스로 기뻐하네

고금특립청장(古今特立靑嶂) 예나 지금이나 푸른 산이 우뚝 섰네

봉암사(鳳巖祠) 지행당(砥行堂) 송독재(誦讀齋)와 관리동은 1993년에 건립했다. 이곳은 문탄(聞灘) 孫린(遴)선생을 모시는 곳이다. 문탄 손린 (1566~1628) 선생의 관향(貫鄕)은 일직(一直)으로 병인년(丙寅 1566) 대구 남구 수성리에서 탄생했다. 손 선생의 선대는 麗朝 諱 홍양 판삼사 직성군 靖平公의 후손이다. 集賢殿 翰林學士이며 端宗節義臣 諱 조서(肇瑞) 號 격재(格齋) 의 5대손이다.

봉암사
봉암사

 

손린 선생은 (1566~1628)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의 문인으로 병오(丙午 160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及第)하고 출사(出仕)를 했다.

선생은 피별선급사천(被別選及史薦)으로 안동. 상주. 경주. 丹城縣監. 禮曹正郞. 兵曹正郎을 역임하고 개흥학(皆興學)을 設敎했다.

선생은 천성이 총명하고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며 평소의 성품이 청렴 정직했다. 의리와 관계없는 일에는 명기가 분발하고 능연함에있어 비록 사생과 화복이 판가름 나고 호흡이 끊어지기 직전에 있어도 돌아보지 앓았다 한다.

당시(光海朝) 정인홍이 회재(晦齋). 퇴계(退溪) 양선생(兩先生)을 무고(誣告)하여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했다. 손 선생은 정인홍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영남유생(嶺南儒生)들의 사론(士論)을 크게 환기해서 여론을 조성하는데 진력했다. 유생의 상소로 退溪와 晦齋 양선생을 마침내 문묘(文廟)에 종사(從祀) 되었음은 선생의 큰 업적이었다. 그로 인하여 흉당(兇黨)들이 害를 입혀 벼슬길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으나 사도(斯道)를 물리고 정도(正道)로 하는 데 힘썼다.

지행당
지행당

 

만년에는 시냇가에 집을 짓고 편액을 문탄(聞灘)으로 했다. 흘러가는 여울물 소리를 들으며 유유자적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 보낸다는 뜻으로 들을 문(聞)字에 여울 탄(灘) 로 했다.

문 탄 선생은 앞산 자락에 기거하며 ’문탄 십경‘을 지었다.

1경은 천령조운(天嶺朝雲) 천령의 아침 구름

2경은 병암모풍(屛巖暮風) 병풍바위에서 부는 저녁 서늘한 바람

3경은 이산신월(伊山新月) 법이산의 뜨는 초승달

4경은 협구도영(峽口渡影) 산골 냇가에 비치는 산 그림자

5경은 청사목봉(靑莎牧逢) 푸른 들판 목동의 피리 소리

6경은 옥야농가(沃野農歌) 기름진 들판 농부들 노랫소리

7경은 파촌취연(巴村炊烟) 파동 파잠 마을의 밥짓는 연기

8경은 유연입석(柳淵立石) 버들 못에 서 있는 돌

9경은 성곡장림(省谷長林) 성곡 골짜기 늘어선 수플

10경은 필봉낙조(筆峯落照) 필봉의 해거름 풍경

위 10경이 모두 앞산 자락 부근의 장소일 것으로 생각된다.

수성못 옆 법이산이 나오고 누에 치는 파동 파잠 마을 연기며 앞산의 병풍바위 등 우리 지역의 명소를 소재로 하여 詩를 지은 문탄 10경‘은 옛 지명을 돌아보는 소중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

대구시에서는 문탄 선생의 10경 詩에 나오는 지명을 복원시켜 시민이 찾는 명소로 만들어 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