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랑, ‘비비안 리’를 추모하며
전쟁과 사랑, ‘비비안 리’를 추모하며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1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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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이 지난 9월 이후 계속되는 가운데, 급기야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혈 사태를 중단하고 협상에 임할 것을 호소했다. 1980년대 구소련에서 분리된 이후 양국의 크고 작은 분쟁은 러시아와 터키, 유럽 등 주변국들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있다.

머빈 르로이(Mervyn LeRoy, 1900~1987) 감독과 비비안 리(Vivien Leigh, 1913~1967),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 1911~1969) 주연의 영화 애수(Waterloo Bridge)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에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개봉되었다.

안개 자욱한 런던의 워털루 다리에서 지프차에서 내려서 작은 마스코트를 만지작거리는 로이 크로닌(로버트 테일러 분) 대령의 회상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1차 대전 중 독일군의 공습을 피하다가 발레리나 마이라 레스터(비비안 리 분)를 만나서 결혼을 약속하고 유럽 전선으로 출정한다. 무단 외출과 밀회로 인하여 친구와 함께 발레단에서 쫓겨난 마이라는 로이의 어머니를 만나는 레스토랑에서 신문에서 그의 사망을 알게 된다. 쫓기듯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녀는 생활고와 함께 자포자기하면서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 시간이 흘러서 전선에서 돌아오는 로이를 기적처럼 워털루역에서 만나게 되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서 로이의 고향으로 가서 결혼 준비를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커지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로이의 어머니에게 과거를 고백하고 떠난다.

워털루 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절망감에 하염없이 울고 있는 마이라에게 거리의 여인이 아는 체한다. 워털루역으로 가면서 손짓하는 늙은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이라는 도리질을 치며 반대쪽에서 오는 장갑차 대열에 몸을 던진다. 작은 마스코트만을 남긴 채…. 그녀의 사랑과 인생을 앗아간 전쟁이라는 괴물에게 가냘프고 연약한 몸을 던져 항거한 것이다.

비비안 리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서 실연을 극복하고 전쟁 중에 농장을 지키는 강인한 여성,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아카데미주연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녀는 금융인인 아버지의 권유로 일찍 결혼하였으나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와 연극 무대에서 만나서 재혼했다. 그리고 그가 전쟁터에 나가면서 런던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독일군의 야간 공습으로 정신적 장애를 겪기도 했었다. 이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두 번째 아카데미주연상을 획득하지만, 조울증이 심해져서 로렌스 올리비에와 헤어지고 외롭게 삶을 마감한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그녀의 영화만을 보면서 말년을 보냈다고 하니, ‘애수’의 마이라처럼 그녀도 영원불멸한 사랑을 얻은 것이 아닌가?

11월 5일은 세기적인 여배우 비비안 리의 생일이다. 사랑의 화신으로 전쟁을 극복하여 세계인들에게 영원한 감동을 준 그녀를 기리며, 모든 전쟁이 지구상에서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기원한다.

  • 사족(蛇足)

워털루 다리는 전쟁 중에 주로 여성 인력으로 개축되어서 ‘The Ladies Bridge’ 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