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공의 삶과 죽음, 시대정신
필립공의 삶과 죽음, 시대정신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1.04.23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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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백열(松茂栢悅)의 마음가짐, 국궁진력(鞠躬盡力),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삶을 살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 에딘버러 공작(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1921∼2021)의 장례식이 지난 4월 17일 오후 3시(현지시간)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거행됐다. 장례식에는 여왕과 아들 찰스 왕세자를 비롯한 자녀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참석하여 필립공의 유언대로 최대한 간소하게 치러졌다. 유해는 필립공이 생전에 준비한 녹색 랜드로버로 윈저성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겨졌으며, 예포가 발사되면서 전국적으로 1분 동안 묵념이 있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유해는 세인트 조지 예배당 지하의 로열 볼트에 안치됐으며, 장례식은 영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한편, 지난 21일 자신의 95번째 생일을 맞은 엘리자베스(Elizabeth Alexandra Mary, 1926∼) 여왕은 영국과 영연방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보내 준 필립공에 대한 추모에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필립공은 지난 4월 9일 백세 생일을 두 달 남짓 앞두고 심장질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당시 국왕인 조지 6세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와 1947년에 결혼하여 공주가 왕위에 오른 1952년도부터 약 70년 간 여왕을 보필하고 외조했다.

1921년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손으로 그리스에서 태어난 필립공은 왕가의 몰락으로 망명 생활을 하던 가운데 부모를 잃고 형제들과 헤어져 외삼촌 마운트배틀 경의 후원으로 영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영국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해군사관생도 시절, 학교를 방문한 조지 6세 가족을 안내하면서 13세의 엘리자베스 공주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해군 장교로 임관하여 그는 나치와 파시스트 정권, 그리고 군국주의 정권과 싸우는 틈틈이 공주와 사랑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7년, 필립공은 그리스 왕가의 직위와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영국에 귀화하여 국왕인 조지 6세의 허락을 받아서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1952년 엘리자베스 공주가 대영제국의 왕위를 계승하면서 그는 해군 중령으로 퇴역하여 70년 동안 제2인자로서 영국 왕실과 국가를 지켜왔다. 제2차 대전이 끝나면서 제국주의의 몰락과 식민지의 독립, 동서 냉전 시대의 도래 등으로 불안한 세계정세 가운데 여왕을 도와서 영국 연방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손으로 어린 시절에 왕가의 몰락을 직접 경험한 필립공은 봉건적인 영국 왕실의 제도와 문화를 시대의 흐름과 국민 정서에 맞추어 조정했으며, 세계자연기금을 비롯한 수많은 국제사회단체의 수장으로 봉사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사이에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 등 3남 1녀, 윌리엄 왕세손을 포함해서 8명의 손자와 10명의 증손자를 두었으며, 왕실 일가의 일탈 행위를 지도 편달하고 영국의 국방과 세계 평화를 위한 전쟁에 왕자들의 참전을 독려하였으며, 평소 왕실의 도덕성과 참여와 봉사, 희생정신을 강조해 왔다.

오로지 영국 여왕의 부군으로서 지내 온 필립공의 삶과 죽음을 동양적인 관점에서 고찰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국궁진력(鞠躬盡力)

그는 사랑을 위하여 조국과 왕위계승권을 버렸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식에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등 자신을 낮추어서 백세를 앞두고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봉사했다.

  • 송무백열(松茂栢悅)

소나무가 잘 자라면, 잣나무가 즐거워하는 것처럼, 여왕의 가장 가까이에서 자애로운 미소와 품위있는 처신으로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 과유불급(過猶不及)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는 세계인들과 함께 필립공도 왕실의 어른으로서 백수(白壽)의 문턱에서 수명을 다하는 과유불급한 삶을 살았다.

이제 그의 혼백(魂魄)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솟대가 되리니….

두 세기에 걸친 고인의 백수(百壽)아닌 백수(白壽), 삶과 죽음은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