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麗水)에서 여수(旅愁)를 느끼다
여수(麗水)에서 여수(旅愁)를 느끼다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08.27 10:0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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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여수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에서
여수시 가막만 전경(디오션 리조트). 정신교 기자
여수시 가막만 전경(디오션 리조트). 정신교 기자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던 코로나19 감염병이 광복절 집회로 인하여 수도권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확진 환자가 나오고 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여수에서 개최되는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회장 박양균, 목포대) 국제 심포지엄에 초대받아 강연을 하게 되었다.

여수(麗水)는 삼면이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데서 유래된 고려 때부터의 지명이다. 학회장인 여수 디오션 리조트는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마주 보이는 가막만의 남쪽 해변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든 객실이 바다를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학교에서 오전 9시 경에 전세버스로 출발하여 섬진강 휴게소에서 재첩비빔밥으로 요기를 하고 학회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되었다. 이사회와 평의원회를 마치고, 푸짐한 해물 요리와 함께 학회에서 마련한 저녁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이순신 마리나 선착장으로 옮겨서 요트를 타고 가막만으로 나가서 여수의 야경과 밤바다를 구경하고 오랜 룸메이트인 K교수와 호텔로 돌아왔다. K교수는 지난해 퇴직하여 양봉을 한다고 해서 나도 선친께 얻어들은 풍월로 맞장구를 치다가 어느 새 잠이 들었다.

여수 밤바다와 여수시 야경(가막만 선착장). 정신교 기자
여수 밤바다와 여수시 야경(가막만 선착장). 정신교 기자

가위 눌린 것 같아서 새벽에 깨어나니 팔다리가 저리고 아프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전전반측하니, K교수가 깨어나서 같이 아침 산책을 나섰다. 무심코 폰을 열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오산우회의 오랜 지기인 L교수의 장녀가 올린 부음이다. ‘바로 지난 토요일에 산행을 하고 헤어졌는데…’. 조식 뷔페를 허겁지겁 끌어넣고 바삐 방으로 돌아와서 강연 준비를 하는데, 단톡방에 조의 문자가 연신 올라오고 있다. 유리창 너머 아득한 수평선에 시선을 던지면서 마음을 추스른다.

정기총회를 마치고 기조강연의 좌장을 보는데, 비대면 강연 진행이 원활하지 못하여 신경이 쓰인다. 시즈오카대학의 Enoch Y. 교수와는 십여 년 이상 번갈아 가며 학술교류와 심포지엄을 개최해왔다. 학술상 수상자인 Y 교수의 강연이 끝나고, 순서가 되어서 재직 중에 주로 한 연구를 요약해서 영어로 발표하다. 기능성 성분의 분리 및 분석과 풋사과 폴리페놀 성분 소재, 그리고 지난 해 유기화학 강의를 언급하면서 끝을 맺다.

도시락 점심을 하고, 방으로 돌아 와서 퇴임한 선배와 안부 통화를 즐기다. 아내가 부탁한 건어물 구입 차 호텔 문을 나서는 데, 제자인 M 박사가 뒤따른다. 여수 향일암(向日庵)에서 보는 다도해가 절경인데, 며칠 전에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가서 아쉽다고 한다. 수산시장에 들러 말린 문어와 아귀포를 구입했다. 말린 문어가 실제는 대왕오징어라는 상인의 말에 놀랐다. 학술 강연장으로 다시 나가서 몇 건의 발표를 듣고, 포스터 발표장을 기웃거리다. 대학원생 자원자로 구성된 관리요원들이 성가시리만치 출입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발열 검사와 QR 코드 확인, 출입대장 기록이 이시대의 다반사(茶飯事)가 되었는데도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동문 제자들과 같이 지역민들이 즐기는 맛집, ‘양지선어 회집’을 찾아가다. 선어 회는 피와 내장을 제거하고 저온에서 숙성하여 만든 생선회로서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농어, 민어, 삼치, 병어, 가오리 등의 다양한 어종에 양태구이, 새우, 소라 등의 밑반찬 요리도 푸짐하다. 이차로 길모퉁이 호프집에서 건배하면서 추억의 일화들을 나누다.

양봉하는 K 교수가 급한 일로 귀가해서 혼자 방을 쓰다. 호젓하게 넓은 유리창에 서니 칠흑 같은 밤바다가 성큼 다가온다. 수평선 너머로 밝고 큰 별 하나가 반짝이면서 사라진다. ‘가까운 여수 사도와 시원한 운문사 솔바람길 등, 추억들이 생생하다. 지난 2월의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부총장직을 맡아서 봉사한 L교수…’,

‘교육과 연구, 봉사,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나는 그저 변하는 강산 따라 세월만 보냈네, 그려’.

‘Donde voy, donde voy

Esperanza es mi destination’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갈까요?

희망을 찾아야 하는데)

호프집의 팝송이 애절하게 귓전을 울린다.

정년퇴임 D-12일, 여수(麗水)에서 여수(旅愁)를 느끼다.

아침 뉴스에 코로나 소식이 심상치 않다. 연일 3백 명 대의 확진 환자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곧 생활방역 2단계 돌입이 예상된다. 지난봄에 미뤄 둔 과년한 딸아이의 혼사가 걱정이다. 조식 뷔페장에서 수도권 대학의 P교수를 조우하다. 백발이 희끗한 모습에 젊은 시절과 중년의 모습들이 겹쳐진다. 삼십년 세월이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해외 강연을 마지막으로 듣고, 폐회 장소로 향하다.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인도네시아의 D양이 경품 행사에서 최고상(iPad)에 당첨됐다. 게다가 졸업생인 J군도 2등상(갤럭시탭)을 수상했다. 해초 비빔밥을 먹고 대학원생들과 전세 버스로 학회장을 떠나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학생들은 마스크를 낀 채로 곯아떨어졌다. 사천, 현풍 휴게소에서 쉬고 나서, 마이크를 잡고 학생들에게 개인위생과 방역을 당부하고 기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사이에 버스는 북대구 IC를 나와 학교 북문을 들어선다.

피곤한 가운데 뿌듯함이 느껴진다.

여수의 아침(디오션 리조트). 정신교 기자
여수의 아침(디오션 리조트). 정신교 기자
특별강연(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 정신교 기자
특별강연(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 정신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