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⑩ 덤
[배철현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⑩ 덤
  • 시니어每日
  • 승인 2023.09.0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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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노년으로 이항하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매력적
오늘 하루는 즐거운 덤· 로또
성서에서는 ‘흰색 머리카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쉐바’sheba는 ‘지혜’를 상징한다.
성서에서는 ‘흰색 머리카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쉐바’sheba는 ‘지혜’를 상징한다.  사진 픽사베이

요즘 부척 제비나비들이 보인다. 반려견들과 후미진 아스팔트길을 따라 산책하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 짙은 남색과 고동색으로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한 제비나비들이 길가에 앉아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들이 고요히 앉아 가을을 맞이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장구한 시간과 같이 느껴지는 30초 정도 지났을 것이다. 나의 응시가 부담스러웠는지, 다시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날개를 휘저으며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나비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안다. 지금-여기를 사는 천사들이다.

인간들은 문자와 도시를 구축하고 달나라와 화성을 간다고 자랑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에게 장착된 욕심의 노예가 되어 그럭저럭 연명한다. 운이 좋은 인간은 부모와 사회로부터 ‘괜찮은’ 교육을 받은 후, 삶의 핵심을 깨닫는 시점이 온다. 주변이나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개선하는 수고가 진정한 혁명이란 사실을 안다. 그 혁명은 자신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최선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눈부신 의학의 발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과 노력으로, 장수를 누리게 되었다. 우리시대 스승 김형석은 인생의 첫 30년은 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한 자기교육에 투자하고, 그 후 30년은 가족의 생계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그 이후의 삶을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고 말씀하신다. ‘인생은 육십부터’하는 말이 있듯이, 육십은 자신을 위한 삶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성서에서는 ‘흰색 머리카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쉐바’sheba는 ‘지혜’를 상징한다. 지혜는,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간접정보가 아니라, 자신의 삶, 특히 희로애락을 통해 자신의 몸에 체득한 직접 정보다. 책을 외워 배우는 사람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다. 이제는 예전만큼 그 가치가 떨어졌다. 인터넷 공간에는 가공할 많은 지식이 널려있어, 이제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의 깊이다.

지식의 가장 심오한 경지는 대상의 심중을 단번에 알아버리는 안목이다. 한 유대 사상가는 우주를 창조한 신을 ‘호크마’ 즉 ‘지혜’라고 말했다. 인간이 지혜롭다는 말은 무엇인가? 인간이 안목을 지닌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안목은 하루에서 우리가 수없이 마주지는 사물과 사람,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상황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소중所重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우리가 사물을 소중하게 여기면, 그것을 아끼고 절약하고 감사한다. 우리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녀)을 자신의 기분과 욕망대로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그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모색한다. 이런 모색을 종교에서는 사랑, 자비, 인과 같은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스토아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세네카는 친구 루킬리우스에서 보낸 <도덕적 편지들> 12에서 인생의 황금기는 ‘노년’에 관한 이야기를 기술한다. 세네카는 최근 자신의 별장을 방문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그가 고용한 노동자가 별장 보수를 많은 돈을 지불한 것을 지적한다.

“내가 어디를 돌아보나, 나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는 증거들을 봅니다. 최근 나는 시골에 있는 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허물어져 가는 건물에 많은 돈을 지불한 것에 뭐라고 말했습니다. 내 관리인이 집의 비참한 상태는 자신의 무관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저)는 모든 조치를 다 취했습니다. 다만, 그 집이 너무 오래됐습니다.”

세네카는, 오래된 건물과 같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숙고하였다. 관리인의 반박할 수 없는 주장을 듣고, 세네카는 자신의 삶의 마지막 구간에 노년에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는 노년을 잘 읽은 탐스러운 과일과 비교한다. 과일은 잘 익었을 때, 가장 맛있다. 젊음은 노년으로 이항하는 그 마지막 순간에 가장 매력적이다. 인간에게 쾌락이란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 그 클라이맥스를 위해 존재한다. 세네카는 삶의 마지막 구간인 노년을 이렇게 표현한다.

“인생은 내려가는 비탈길에 가장 신이 난다.

그 길이 아직 갑작스런 퇴장(죽음)에 도달하지 않았다.”

세네카는 갑작스런 퇴장, 즉 죽음이 인생의 즐거운 구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 퇴장을 잠으로 해석한다. 그는 운명에 그에게 정해준 여정을 마칠 때, 기쁜 마음으로 수용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자신이 애써 걸어온 삶에 대한 경의다. 그런 사람은 퇴장의 순간에 이렇게 말한다:

“그는 ‘나는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하루를 덤으로 선물로 받아왔다.”

세네카는 하루를 라틴어로 ‘루크룸lucrum’ 즉 ‘예상치 못한 이윤; 이자; 로또’라고 여겼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그저 그렇게 보이던 사소한 것들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보이는 지혜를 작동시켜야할 시점이다. 세네가는 아침이 일어나, 그 하루를 즐거운 덤, 로또로 여겼다. 그런 날들을 앞으로 살고 싶은 소중한 아침이다. 매 순간 삶을 음미한 휘트먼의 눈길을 담고 싶다.

 

배철현 작가

고전문헌학자이자 작가. 인류 최초 문자들의 언어인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쐐기문자 비문에 관한 연구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명원建明苑 원장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블로그 <배철현의 매일묵상>(blog.naver.com/eduba)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관찰을 글로, 유튜브 채널 <배철현의 더코라 THE CHORA>을 통해 동서양 경전과 고전을 통해 얻은 혜안을 영상으로 올리고 있다. 2020년 교육기관 ‘더코라(www.thechora.com)’를 설립하여 청소년과 예술청년들을 위한 인문학교 ‘서브라임’과 경영인들을 위한 ‘코라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여정』 『배철현의 위대한 리더』 그리고 위대한 개인을 발굴하기 위한 에세이 시리즈 『심연』 『수련』 『정적』 『승화』, 신간 『배철현의 요가수트라 강독1:삼매』 등이 있다.

출처 : 시니어매일(http://www.senior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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