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행에서 나와 반려견들을 맞이하는 것은 낙엽과 부러진 나뭇가지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발을 옮길 때마다, ’부석부석‘ 소리를 낸다. 줄기에 매달릴 힘이 없는 크고 작은 가지들이 더 이상 구차하게 줄기에 매달리지 않는다. 자신을 우주의 주인인 중력에 맡겨 낙엽 위에 낙하하였다. 우리가 가지를 보고 있는 동안, 저 언덕 바위 위에서, 노란색 담비 두 마리가 얼음이 되어 우리를 쳐다본다. 우리의 무단침입에 놀란 것이다. 그들은 짙은 고동색 긴 꼬리를 치켜들고 흔들며, 언덕 위를 울렁울렁, 상상 속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이며 사라졌다. 나는 수년 전 이맘때, 한 야산을 오르다 담비 가족을 보았다. 담비는 만물이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겨울을 준비하는 깊은 가을에 만난 인연因緣이다.
시간은 저 시냇물처럼 무심코, 무작정, 흘러가 버린다. 누구도 같은 시냇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다. 내 다리에 부딪힌 시냇물은 이내, 그 주위를 돌아, 저 아래로 흘러 사라진다. 물은 용감하다. 순간을 살면서도 이 순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갈 수 있고, 가야만 가고, 그래서 가고 있는 바다로 스스로 간다. 바다로 가는 이유는 자기의 위치보다 낮은 곳이기 때문이다. 바다에 도착하면, 다른 곳에서 몰려온 물과 하나가 되어, 승천昇天을 준비한다. 태양이 바다로 빛과 열을 보내, 물을 데워 가볍게 만들어 하늘로 올릴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사실 올라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 솔로몬(기원전 10세기)의 어록으로 알려진 <전도서>에 이런 문구들이 있다. <전도서>에는 기원전 5세기에 등장한 페르시아 제국에서 사용된 어휘들과, 아람어 단어들이 수록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기원전 4세기경 쓰였을 것이다. 누군가 이스라엘인들은 나라를 잃고 고대 근동 전역에 흩어져 날면서, 자신들이 언젠가는 나라를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는 자신들의 전설적인 지혜의 왕 솔로몬의 입을 빌어 어록형식으로 이 책을 썼다. 인생은 인간이 처음에 계획한 대로 펼쳐지는 법이 없다. 인생의 봄은 가을과 겨울을 통과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인간은 다른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의 거대한 변화를 감지하고, 그 섭리대로 살아야 한다. 전도자는 인생의 엄연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모든 일엔, 하늘 아래 일어나는 인간의 모든 의지와 욕망엔, 그것들이 일어나는 이미 정해진 시간과 시절이 있습니다. 날 시절이 있고 죽을 시절이 있으며, 심을 시절이 있고 심은 것을 뽑을 시절이 있습니다. 죽일 시절이 있고 치료할 시절이 있으며, 헐 시절이 있고 세울 시절이 있습니다. 울 시절이 있고 웃을 시절이 있으며, 슬퍼할 시절이 있고 춤을 출 시절이 있습니다.
돌들을 던져 버릴 시절이 있고 돌을 거둘 시절이 있으며, 껴안을 시절이 있고 껴안는 것을 멀리 할 시절이 있습니다. 얻을 시절이 있고 잃을 시절이 있으며, 지킬 시절이 있고 버릴 시절이 있습니다. 찢을 시절이 있고 꿰맬 시절이 있으며, 침묵을 유지할 시절이 있고 말할 시절이 있습니다. 사랑할 시절이 있고 미워할 시절이 있으며, 전쟁할 시절이 있고 평화를 유지할 시절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맨 처음에는 두 종류의 시간을 언급한다. 한 종류의 시간은 ‘정해진 시간(히브리어, 쩌만)’이며, 다른 종류의 시간은 시냇물이 순간을 경험하는 순간, 즉 과거, 현재, 미래 하는 틀을 초월한 지금이자 영원이 된 시간(히, 예쓰), 즉 어떤 일이 그 시점에 발생해야만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며 시절이다. 저자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두 번째 시간만을 사용한다. 신만이 ‘정해진 시간’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은 두 번째 시간으로, 과거-현재-미래를 초월한 ‘지금’이다.
불교에서는 이 지금이면서 항상인 시간을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고 부른다.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은, 자연의 시간인 시절과 같이 반드시 온다. 어리석은 자는 시간을 현재-미래라는 허상 안에서 살지만, 지혜로운 자는 지금-항상이라는 ‘시절’과 인연을 맺는다. 흘러간 시간은 언제나 순간이다. 우리가 살아온 순간을 돌아보면, 누구나 이 진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가 순간을 산 것처럼,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세상을 떠날 것이다.
순간을 시절인연으로 살 수 있는 두기지 마음가짐이 있다. 첫째는 오늘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덤으로 사는 것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정받은 환자에게, 하루는 기적이며 감사다. 우리가 하루를 덤으로 산다면, 부모, 형제, 자식, 친구들의 얼굴이 더욱 보고 싶어지고 그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그들에게 우리의 진실한 마음을 전화 통화 목소리와 문자를 통해 전하는 마음이, 시절인연으로 사는 비결이다. 두 번째, 우주가, 신이, 사회가, 자연이, 혹은 자기 스스로 깨달은 고유한 임무이자 의무를 자신의 ‘분수’에 맞게 실천하는 것이다. 인간은 매일 아침 부활한다. 잠은 일종의 죽음이다, 잠은 하루를 인생의 초보자로 살라는 자연의 섭리다.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가 의무가 되고, 그 의무를 자신이 속한 공동체 개선을 위해, 조화롭고 친절하게 때로는 파격적으로 펼칠 때, 선물이 하나 도착한다. 품격品格이다.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기품이나 위엄이다.
우리가 그런 품격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고대 로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아침에 일어나 자신에게 일어날 최악의 상황들을 항상 상상하고 그것을 미리 준비했다. 그는 이런 마음가짐을 라틴어로 ‘프레메디타치오 말로룸’이라고 말했다. 이 문구를 직역하면 ‘최악의 일들에 대한 예견(豫見)’이다. 이것은 비관적인 삶의 철학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부모, 자식,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본다는 심정으로 만날 때, 그 조우는 감동感動이 될 수 있다. 저 쓰러진 나뭇가지도, 저 바위 위에 나타났던 담비도, 내가 끌고 있는 반려견도 시절인연들이다. 글을 마치고 부모님께 전화 드리고 싶다. 아내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 싶고 머나먼 땅에서 일하고 있는 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배철현 작가는
고전문헌학자이자 작가. 인류 최초 문자들의 언어인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쐐기문자 비문에 관한 연구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명원建明苑 원장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블로그 <배철현의 매일묵상>(blog.naver.com/eduba)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관찰을 글로, 유튜브 채널 <배철현의 더코라 THE CHORA>을 통해 동서양 경전과 고전을 통해 얻은 혜안을 영상으로 올리고 있다. 2020년 교육기관 ‘더코라(www.thechora.com)’를 설립하여 청소년과 예술청년들을 위한 인문학교 ‘서브라임’과 경영인들을 위한 ‘코라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여정』 『배철현의 위대한 리더』 그리고 위대한 개인을 발굴하기 위한 에세이 시리즈 『심연』 『수련』 『정적』 『승화』, 신간 『배철현의 요가수트라 강독1:삼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