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⑧기꺼이
[배철현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⑧기꺼이
  • 시니어每日
  • 승인 2023.06.26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의 원칙에 '기꺼이' 투자할 때 인간은 변한다
‘기꺼이’라는 부사, '최고우선' '정성' '자발' '몰입' '희망' 혼재
건강한 나 ‘기꺼이’ 원한다면...고통도 즐거움으로 승화
백합
백합

나는 오늘 무엇에 기꺼이 나의 최선을 투자할 것인가? 우리 모두가 관심이 있는 투자投資에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투자는 운運이라는 여신이 나에게 가져올 육체의 쾌락과 편리를 위한 불안한 투자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에는 그런 투자의 귀재를 ‘현자’라고 치켜세운다. 이 투자는 아무리 조심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행운의 여신이 눈을 감고 부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때문이다. 이 수레바퀴를 영원히 돌리면, 그 운이 통계적으로 언젠가 나에게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그런 운을 기다려 줄 만큼 길지 않다. 두 번째 투자는 첫 번째 투자의 연속으로 인간관계를 삶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는 투자다. 누구와의 관계를 통해 나에게 떨어진 운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 두 가지 투자는 투기投機다. 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투자’가 있다. 자신을 행복을 지탱시켜줄 삶의 원칙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 원칙은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스스로 심사숙고하여 정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삶의 원칙에 모든 정성을 ‘기꺼이’ 투자할 때, 그 인간은 서서히 변한다. ‘기꺼이’라는 부사에는 삶의 최고우선, 정성, 시간-장소의 투자, 자발, 몰입,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열망과 희망이 혼재되어 있다. ‘기꺼이’는 나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어떤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싶다는 일종의 강박관념도 숨어있다. 그런 불편은 내가 기꺼이 할 일과 그 결과에 느낄 환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나로 개조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로 ‘기꺼이’에는 고통도 즐거움으로 변한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나의 행위는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억지로 한 행위와 다른 하나는 기꺼이 한 행위다. 억지로 한 행위들은,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니라, 나하고 상관이 없는 주체들이 나에게 강요한 일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내가 감히 질문할 수 없고 도전할 수 없는 힘을 지녔다고 말한다. 가정교육, 학교 교육, 군대교육, 그리고 사회교육이라는 말로 내가 아닌 나로 개조시키려고 애썼다.

교육은 개인에게 맞춤이어야 한다. 인생의 시행착오를 먼저 경험한 부모父母와 선생先生들이 한 개인이 지닌 고유한 소질이 무엇인지 가만히 심사숙고하여, 단점을 제고하고 장점을 연습하라고 자녀나 학생에게 정중하게 부탁해야 한다.

‘기꺼이’라는 단어에는, 그런 태도로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하는 자에게 자존감을 고취한다. 자존감이란 오만이나 건방짐과는 다르다, 자신을 1인칭으로 취급하지 않고 자신이 되고 싶은 3인칭으로 여기고, 그런 3인칭이 된 자신을 존경하는 마음이다. 한 공동체의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자존감을 지닌 자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상상한 이상에 스스로가 적격이 아니라면, 자신을 탄핵하고 자기 잘못을 스스로 고백한다.

‘잘못시인’은 리더의 최고 덕목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왕이며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정복자인 다윗을 보자. 나단 선지자가 그가 아무도 모르게 자기 부하의 아내를 간음한 일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최고 권력자인 다윗은 나단을 한순간에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곧 바로 시인하였다. 다윗은 왕으로서 이상적인 통치자로서의 ‘다윗1’과 욕망의 노예가 된 ‘다윗2’을 구별하였다.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승화된 자신을 선정하고, 그런 자신이 되기 위해 일기日記를 썼다. 일기란 매일매일 자신의 언행을 정색하고 관찰하고, 새로운 자신을 결심하는 수련장이다. 그는 아우렐리수스 1이 되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항상 최선을 시도한다. 그가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시도를 이렇게 묘사한다.

“당신의 행동이, 완벽하게 습관으로 정착된 올바른 원칙에 따라 실행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싫증을 내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실패하면, 다시 그 원칙으로 돌아가십시오. 당신이 하는 일이 대부분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을 사랑하십시오.”

<명상록> V.9.1-3

위 구절은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신봉한 스토아 윤리의 핵심이다. 자신이 판단하여 가장 소중한 삶의 행위, 즉 덕이라면, 그것은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누구의 방해와 눈치를 받지 않고 스스로 하는 행위다.

철학은 그에게 말의 유희가 아니라 삶의 원칙을 지키려는 ‘거룩한 습관’이었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에게 철학은 우리의 본성이 원하는 것만을 요구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자신의 본성에 어울리게 사는 것만큼 더 쾌락적이며 매력적인 것은 없다고 기록한다. 그런 후 자신에게 매력적인 것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고매함, 단순함, 자유로움, 배려, 경건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다. 현명함 자체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다.”

<명상록> V.9.8-9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덕목을 모두 지닌 자가 아니다. 그는 고매高邁함, 단순單純함, 자유自由로움, 배려配慮, 경건敬虔을 삶의 지표로 삶과 이것을 자신의 언행으로 실천하려고 스스로 애쓴 사람이다. 그는 그런 삶이 현명한 삶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덕목들을 언행의 습관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이것들을 즐거움으로 느끼는가? 나는 오늘 하루를 어디에 기꺼이 투자할 것인가? 나는 이 백합처럼, 완벽한 모습을 구가하기 위해 오늘을 기꺼이 사는가?

 

배철현 작가

고전문헌학자이자 작가. 인류 최초 문자들의 언어인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쐐기문자 비문에 관한 연구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명원建明苑 원장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블로그 <배철현의 매일묵상>(blog.naver.com/eduba)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관찰을 글로, 유튜브 채널 <배철현의 더코라 THE CHORA>을 통해 동서양 경전과 고전을 통해 얻은 혜안을 영상으로 올리고 있다. 2020년 교육기관 ‘더코라(www.thechora.com)’를 설립하여 청소년과 예술청년들을 위한 인문학교 ‘서브라임’과 경영인들을 위한 ‘코라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여정』 『배철현의 위대한 리더』 그리고 위대한 개인을 발굴하기 위한 에세이 시리즈 『심연』 『수련』 『정적』 『승화』, 신간 『배철현의 요가수트라 강독1:삼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