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님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틀니처럼 호텔 방에 두고 왔나 봅니다
기왕에 해외여행을 떠났다면 국내의 다사다난한 세상사는 몽땅 잊고 몸과 마음을 내맡겨야 한다. 눈물이 필요하면 한 방울쯤은 아끼지 말고 기분 좋게 흘리고, 웃음이 필요하면 입 찢어지게 애드리브로 웃는 게 좋다. 짜진 각본에 따라 밋밋하게 끝나는 것보다는 고춧가루 같은 양념으로 얼버무려진 반찬처럼 감질나야 맛이 있다.
할머니들이 바깥 경치에 정신이 팔렸다. 이국의 농촌풍경이 국내랑 별반 다르지가 않아 기시감이 들어 정감이 가는 표정이다. 마이크를 든 가이드의 설명은 따위는 관심 밖으로 내팽개쳐진다. 소 귀에 경 읽기로 들어도 금방 잊는단다. 어차피 가는 귀가 먹어 ‘웅웅’ 거릴 뿐이라며 하얀 미소다.
호텔을 떠나온 지도 벌써 한 시간 남짓하게 흘러 차량의 질주가 매끄럽다. 문득 뒤편으로 앉은 할머니가 손을 번쩍 들고는 이빨이 없단다. 이 무슨 소린가 싶은데 분명 아침을 먹을 때까지는 있었다며 울상이다. 며느리가 어렵게 장만한 것이라 가이드를 보고 꼭 찾아 달라며 애원이다. 쫑알쫑알, 며느리의 지청구가 내 일처럼 와 닿아 안타깝지만 난감하다. 급히 호텔로 전화를 건 가이드가 세면대 위에 있더라며 안심하란다. 천만다행이기는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호텔 투숙객이라 서비스 차원에서 주소를 주면 우편을 통해 댁으로 보내주는 것으로 단락을 짓는다.
그날 이후 할머니가 어떻게 식사를 했는지는 각자의 상상이다. 단지 여행을 떠난 늙은 시어머니는 아니 오고 전사자의 손톱처럼 틀니를 받은 가족들의 당황함이 그저 짐작이 갈 뿐이라는 이야기가 버스 안을 웃음바다로 몰아넣는다. 그도 잠시 웃음이 막 끝날 즈음 뒷자리에 앉았던 일행 중 한 분이 지갑이 없단다.
볼펜을 귀에 꽂고는 볼펜을 찾고, 멋을 부린다며 안경을 머리에 올려 안경을 찾고, 당황하면 휴대폰을 손에 들고 “내 휴대폰!” 하고 덤벙거린다며 깨알 같은 충고다. 하지만 여전히 못 찾겠다며 꾀꼬리란다.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떠나는 통에 본인은 오죽이나 답답하겠나? 호주머니를 까뒤집더니 갑갑증이 이는지 겉옷을 활활 벗는다. 다행히 숙소에서 5분 정도 거리라 다시 돌아갈 수가 있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도착 즉시 짐칸으로부터 애꿎은 캐리어가 몸살을 앓는다. 홀라당 뒤집어서는 온갖 장기에 창자까지 주물럭주물럭 이를 잡듯 뒤지는 것도 모자라 호텔 방을 들러보았지만 소용없어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풀 죽어 실망한 표정이 안쓰러워 말을 붙이기도 무서운데 “신용카드는 분실 신고로 끝났고, 지갑 속 20만여의 돈만 남 좋은 일 시켰습니다” 허탈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는다.
다들 연민으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인데 다시 가이드의 시간이다. 일본에서 여권을 잃어버려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추가 비용에 단지 조금 늦게 갈 뿐이란다. 신분증만 지니고 있으면 영사관을 통해 하루 정도면 임시여권이 가능하단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어서 중국을 포함하여 공산권의 국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어림없단다. 비용도 많이 들어갈 뿐 한참 동안 곤란한 지경에 빠진다며 여권은 내 몸처럼 여기라며 열변이다.
그때 앞쪽 자리에 앉았던 여행객 중 한 분이 손을 번쩍 들더니 눈이 없단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고! 어떻게 귀중한 눈을 잃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가이드도 처음인 듯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버스 출발 전 여권을 비롯하여 기본적인 상항에 대해 분명 꼼꼼하게 점검했건만 지갑이 없고 안경의 행방이 묘연하단다. 책임을 통감하는지 차분하게 잘 찾아보란다.
“아~ 가이드님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틀니처럼 호텔 방에 두고 왔나 봅니다” 는 말에 급히 연락을 취하자 잠시 후 호텔 측 답변이 찾았단다. “다행입니다” 라는 답변에 오늘 귀국을 했다가 내일 다시 일본에 들어와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이드님 저~ 지갑 찾았습니다”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일행들의 눈이 일제히 뒤쪽으로 돌아가는데 암갈색 지갑을 손에 들고는 환하게 웃는다. 어디서 찾았냐는 질문에 깊이 갈무리를 한다고 가방 안쪽, 잘 쓰지 않는 곳에 넣어 지퍼를 채운 것이 화근의 시작이란다.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등 한참 동안 부산을 떨다가는
“다른 것은 다 해결되었는데 신용카드 해제는 국제전화라 가족으로 안 되네요!” 행복에 겨운 한편으로 낭패한 볼멘소리다.
가이드는 여행안내를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겪는데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며 웃는다. 덧붙이기를 국내 여행은 나이의 고하를 따지지 않건만 해외 관광은 가슴 뜨거울 때 떠나는 것이 아니라며 다리 힘 있을 때 떠나라고 충고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구경에 민폐가 되지 않는단다. 그러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적에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여행 가방을 꾸리란다. 내 돈은 내가 써야지만 내 돈이라고, 형편이 된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적에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말고 훌훌 떠나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여행의 감동으로부터 점차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올 즈음 단톡방에 짤막한 글 하나가 올랐다.
“오늘 일본에서 잃어버린 제 눈이 돌아왔네요!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