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테마기행, 서산 해미읍성(4)
충남 테마기행, 서산 해미읍성(4)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3.06.23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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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과 다양한 체험이
함께하는 서산 해안읍성을 가다
해미읍성. 박미정 기자
해미읍성 1. 박미정 기자

 

행정과 군사의 기능이 합쳐진 서산 해미읍성, 읍성의 문을 들어서면 잘 가꿔진 초록의 잔디밭이 드넓게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인다. 바다 해(海)와 아름다울 미(美)를 쓰는 해미, 조선초기의 두 고을 정해현의 '해'자와  여미현의 '미'자를 따서 두 지역을 합쳐 부르며 생겨난 지명이다. 해미읍성은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하던 곳으로의 흔적이 있으며, 천주교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해미읍성. 박미정 기자
해미읍성 2. 박미정 기자

 

또한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으로 240여 년간 충청지방 군사령부 역할을 하였으며, 1579년에는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한 후 세 번째 관직을 받아 이곳에서 충청병마절도사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하기도 했다. 병영이 청주로 이전되고 나서 충청도 5전영 중 하나인 호서좌영이 들어서게 되고, 영장으로 무관을 파견해 호서좌영장과 해미현감을 겸직하게 하면서 행정적 역할도 하게 되었다. 

지도 속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박미정 기자
지도 속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박미정 기자
조선시대. 형장을 재현해 놓았다. 박미정 기자
조선시대 형장을 재현해 놓았다. 박미정 기자

 

서산 해미읍성은 조선후기 천주교박해의 산증인으로 순교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19세기 후반까지 백여 년 동안 1만여 명에 달하는 순교자가 나오게 되었다. 해미진영의 영장은 내포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여 처형하였는데, 1천 여명 이상이 해미읍성에서 순교했다. 1791년 신해박해 때 정약용은 당시 천주교 신자란 죄명으로 이곳 해미읍성으로 유배를 오기도 했다. 

조선시대 가옥 모습. 박미정 기자
조선시대 가옥 모습. 박미정 기자
해미읍성 돌담이 정겨움을 듸한다. 박미정 기자
해미읍성 돌담이 정겨움을 더한다. 박미정 기자

 

오늘 날 해미읍성은 보고, 듣고, 체험할 거리가 가득한 가족관광지로 잘 가꿔져 있다. 읍성 안을 걸으며, 조선시대의 무기들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고, 읍성을 돌다 보면 다양한 민속놀이(투호, 고리던지기, 제기차기, 굴렁쇠 등)를 직접 즐기는 공간도 있으며, 국궁체험도 할 수 있다. 더불어 해미 지역의 재능있는 어르신들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민요와 풍물놀이, 매주 1~2회씩 진행하는 다양한 공연도 있으니 가족관광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기자가 투호 체험을 하고 있다. 박미정 기자
기자가 투호 체험을 하고 있다. 박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