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개 속의 남해 미인도(비진도)가 환상이어라!
는개 속의 남해 미인도(비진도)가 환상이어라!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6.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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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게 멀어지는 미륵산이 하늘에 몸을 담아 상반신을 지웠다
이순신 장군이 비진도 앞바다에서 왜적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보배로운 섬
차(車)와 포(包)를 떼고 나니 달랑 남은 것은 손바닥만 한 게 한 마리가 전부
그리움 한 줌을 놓아두고는 아이 셋 낳고 다시 찾으려나!
일찌감치 선유봉 등산을 마친 여행객이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일찌감치 선유봉 등산을 마친 여행객이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통영항에 옹기종기 모여선 회원들의 얼굴이 수심으로 얼룩져서 침통해 보인다. 아는지 모르는지 잿빛 하늘은 시시때때로 가랑비를 흩뿌리고 있다. 일기정보와는 달리 그칠 듯 그칠 줄을 모른다. 수개월 전부터 계획한 여행이 수포에 그칠까 싶어 안절부절 못 한다,

우려와는 달리 통영항을 뒤로하여 비진도를 향한 뱃고동 소리가 우렁차다. 엔진소리에 힘을 더하여 세차게 물살을 가른다. 아득하게 멀어지는 미륵산이 하늘에 몸을 담아 상반신을 지웠다. 가기는 가는데 오늘 중으로 돌아올 수나 있으려나? 미륵산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운무 속을 들락날락 연신 자맥질이다. 이럴 땐 군입을 다시는 것이 최고란다. 어느새 이 층 간판 군데군데로 조촐한 술자리가 펼쳐진다. 비야 오든 말든,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든 말든 오롯이 여행을 즐기려는 모습이 한편으로 애교스럽다.

어느새 배의 고물로 갈매기 한두 마리가 날아들기 시작이다. 순식간에 대여섯 마리가 엉키어 분주하다. 새우깡을 든 관광객을 향해 애절한 눈빛을 세운다. 손가락 끝으로 쥐어 진득하게 유혹해 보지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다가들기를 거부한다. 안 먹으면 그만이지 모험은 하지 않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참다못한 관광객이 공중으로 과자부스러기를 날린다. 잽싸게 받아먹는 모습이 과히 프로급이다. 사람은 던지고 갈매기는 받아먹는 재미에 잠시 시름을 잊는다. 갈매기의 재롱을 빌어 는개 속으로 걱정이란 단어를 말갛게 씻는다.

비진도는 통영항에서 14Km여 떨어져 있다. 최고봉이 외항의 선유봉으로 해발 311m다. 섬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8자 혹은 모래시계처럼 보인다. 섬의 이름에 관해 조선 시대에는 일명 비진도(非珍島·非辰島)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또 비진(比珍)은 산수가 수려하고 풍광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해산물이 풍부하여 ‘보배(珍)에 비(比)할 만한 섬’이란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비진도 앞바다에서 왜적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보배로운 섬이라는 뜻에서 비진도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비진도의 또 다른 이름은 ‘미인도’이다.

선착장에서 바라 본 내항의 모습. 이원선 기자
선착장에서 바라 본 내항의 모습. 이원선 기자

약 40여 분을 달려왔을까? 고래 가족이 유영을 즐기는 벽화가 시야에 들어온다. 빨간색 양철지붕을 뒤집어쓴 비진도의 내항이 건네오는 환영의 인사가 정겹다. “너를 따라 왔더니 비진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몇몇 승객이 내리고 다시 10여 분여를 달린 끝에 오늘의 목적인 외항에서 여객선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닻을 내린다.

체력이 좋고 날씨가 좋다면 내항으로부터 외항을 오롯이 돌아들면 최고의 관광코스다. 그렇다고 무리는 할 필요가 없다. 외항에서 선유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외길이다. 단지 시계방향으로 도느냐, 반대 방향으로 도느냐의 선택일 뿐이다. 일행은 좀 더 수월하다는 반대 방향의 코스를 택했다. 몇 걸음 못가서 염소똥 냄새가 풍긴다. 등산로 곳곳으로 멧돼지를 주의하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밭의 언저리로는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는 울타리가 굳게 처졌다.

초입의 등산로를 따라 비진도가 국립공원임을 알리려는 듯 ‘한려수도 백리길’ 이라는 하늘색 띠가 뱀 등처럼 늘어져서 길 안내를 자처한다. 그도 잠시 포장길은 이내 너덜겅 지대에 이른다. 울창하게 우거진 산길로 비진도의 속살을 드러낸다. 하늘을 가린 숲이 터널을 이룬다. 이름 모를 산새가 나뭇가지 곳곳에 숨어 제각각의 옥음으로 울음 운다. 오른쪽, 바다 쪽으로는 해무를 잔뜩 품은 파도 소리가 늦봄의 시원한 바람을 밀어 올린다. 힘에 부치는지 묵직하게 운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된 만큼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고 팔손이나무도 보인다. 정상이 가까워진 곳에 다다르자 해무는 더욱 짙어 오리무중에 갇힌 기분인데 길섶으로는 새하얀 꽃잎이 소복하게 깔렸다. 때죽나무 꽃인가? 쪽동백나무의 꽃인가? 물기를 잔뜩 품어서 뽀얗게 널브러졌다. 꽃잎을 주워든 손에서 나도 모르게 섬의 향기를 찾는다. 핑계 삼아 숨을 고르며 바람이 튕겨내는 고운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여행객을 반기는 내항의 고래 가족 벽화, 이원선 기자
여행객을 반기는 내항의 고래 가족 벽화, 이원선 기자

정상에 도착한 일행이 서로를 마주 보여 하얗게 웃는다. 해무가 올라앉았나? 는개로 머리를 감았나? 진득한 땀방울이 누룽지처럼 눌어붙었나? 뒤죽박죽 헝클어진 머리가 폭탄을 맞은 형상이란다. 손가락질로 끼드득거린다. 굴뚝에 들어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모습을 보고 취한 행동같이 손가락빗으로 빗고 털어 흔들다가는 또 웃는다.

여전히 는개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배 시간은 2시간 남짓으로 요원해 보인다. 각자 시간 보내기에 골몰이다. 몇몇은 의자에 앉아 산행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토막잠을 청하고, 서넛은 횟집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또 몇몇은 건넛마을을 돌아본다며 길을 나선다. 여름을 기다리는 산책길 왼편으로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졌다. 거북이랑 친구라도 했는가? 느릿느릿한 모습이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속에서 한 폭의 그림만 같다. 여전히 하늘의 심술보는 통통 부었나 보다. 용케도 참았던 하늘이 부지불식간 비를 흩뿌린다. 천하태평의 느린 걸음이 손바닥을 하늘로 종종거린다. 비를 피해 술래잡기다.

방파제 주위로 사람 그림자 어른거린다. 아버지는 전날 던져놓은 통발을 걷고 어린 딸은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줄줄이 던져놓은 통발을 걷어 보지만 그럴싸한 조황이 보이지 않는다. 어부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바다가 내어주는 만큼 만족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딸은 욕심이 있는지 입이 삐죽이 돌아간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무심한 얼굴로 작은 고기는 바닷속으로 풀어 놓는다. “이것도 놓아 주자”는 물음에 소녀의 머리가 가만 끄덕인다. 자잘한 고동 한 움큼이 바다 위를 부챗살로 펴져 나간다. “천사님 고맙습니다” 어린 딸에게 인사를 건네며 뽀글뽀글 엄마를 찾아가는 발길 바쁘다. 차(車)와 포(包)를 떼고 나니 달랑 남은 것은 손바닥만 한 게 한 마리가 전부다. 어부 가족의 저녁 밥상이 궁금하다. 된장찌개에 넣을까? 통째 구워서 어린 딸이 먹을까? 찜으로 가족이 사이좋게 나누어 분홍색으로 즐길까?

관광객이 던진 새우깡을 입에 물고 있는 갈매기. 이원선 기자
관광객이 던진 새우깡을 입에 물고 있는 갈매기. 이원선 기자

노을빛 붉은 태양이 수평선을 희롱한다면 작은 섬이 아낌없이 내놓은 정취에 취했을 풍경이다. 이내 속으로 내려앉은 오백 원 동전 크기의 태양이 상상 속에서 불그스레하다.

잿빛 해무를 뚫고 뱃고동이 길게 운다. 해풍에 몸을 씻고, 해무에 휩싸이고, 는개가 수평선을 하늘색으로 지워버린 아름다운 섬과 작별할 시간이란다. 지겹도록 기다렸던 시간과는 달리 항구로 들어서는 배가 불쑥 야속하다. 낚시꾼의 매서운 눈길이 초릿대를 노려보는 사이를 거북이걸음으로 지나 배로 향한다. 뱃전에서 바라다보는 섬이 잿빛에 묻혀서 아득하다. 들썩거리던 선착장으론 을씨년스런 바람만 오간다. 그리움 한 줌을 놓아두고는 아이 셋 낳고 다시 찾으려나! 이내 오라고 손짓 인양 호빵처럼 부푼 산마루가 말갛게 드러난다. 그도 잠시 때 이른 어둠 살이 쌍봉 위를 가만가만 뒤덮어 내려앉는다.

통영항에 모인 일행이 멋진 추억을 남겼다며 입을 모은다. 는개가 오락가락해서 오히려 더 좋았단다. 승선표를 잊어버려 아니 오려고 했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기억이 깊다며 미인도의 풍경을 회상하는 듯 꿈에 취한 눈매가 선선해서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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