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축제, 꽃 여행] 영덕 대게와 강구항
[봄 축제, 꽃 여행] 영덕 대게와 강구항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4.11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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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대게 모형으로 이곳이 영덕대게로 유명한 항구임을 알 수 있다
거대한 대게 모형으로 이곳이 영덕대게로 유명한 항구임을 알 수 있다

청송군 경계에 있는 대둔산 등지에서 발원한 오십천이 영덕읍을 감싸 흘러서 동해와 만나는 곳에 영덕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이 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항구의 거리는 대체로 한산하다. 강구항에 들어서자 항구가 지닌 특유의 짭조름하고 비릿한 냄새는 생각보다 희미하다. 동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그저 선선하기만 하다. 강구항으로 들어가는 다리와 건물 곳곳을 장식한 대게의 모형이 없었다면 이곳이 영덕대게로 유명한 항구인가 싶기도 하다.

대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게이기도 하지만 다리가 대나무(竹)처럼 쭉쭉 뻗은 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태조(왕건) 14년(서기 931년) 지금의 영해지역을 처음 순시하였을 때 임금의 주안상에 특별한 음식으로 대게를 올렸다(고려말 권근의 양촌집)”는 기록으로 보아 영덕지방에서 대게는 그 역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수아미노산, 단백질 특히 키토산과 타우린 산 등이 껍질에 많다는 대게는 회로 먹기도 하지만 찜으로 먹는 것이 단연 최고다. 기절시킨 다음 15~20여 분간에 걸쳐 김을 올려 찐 대게를 마주하면 푸짐함과 대게 특유의 향긋한 냄새에 이끌려 입안에선 절로 군침이 돈다. 먹는 방법도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가지런하게 가위로 잘라서 먹기도 하지만 쇠꼬챙이로, 대게의 다리로, 집게발을 칼로 사용하여 먹기도 한다. 열 손가락도 모자라 입으로 깨물어서는 입심으로 ‘쭉쭉’ 빨아서 먹기도 한다. 간혹 멋모르고 너무 세게 빨아 당겨 씹을 사이도 없이 통째로 게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사레가 들어 ‘컥컥’거리지만 이 또한 대게를 먹는 제맛이라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백미는 게장비빔밥과 게딱지에 밥을 비벼서 먹는 것이다. 게딱지 비빔밥은 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일미 중의 일미다. 또 게장비빔밥은 미리 준비된 그릇에 게장을 담아 참기름과 김 등을 버무려서 먹는 것이다. 자칫 느끼함이 느껴진다면 깍두기나 김치를 곁들여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달대게로 판정되면 초록색 팔찌가 채워진다.
박달대게로 판정되면 초록색 팔찌가 채워진다.

이날 박달대게의 경매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도착한 곳에서는 경매 준비가 한창이다. 박달대게는 그 종이 따로 있다. 박달대게란 박달나무처럼 무겁고 단단하다는 뜻을 지닌 대게의 별칭이다. 따라서 살이 꽉 찼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박달대게의 경우 주둥이 끝부터 등딱지 밑 끝까지 10㎝ 이상이 되어야 하며, 다리와 몸통 살의 수율이 90% 이상인 이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만 한다. 하지만 박달대게를 먹으려다 간혹 속았다는 소비자가 있다. 이는 그 판단 기준이 기계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손 감각에 의존한 부작용 때문이기도 하다. 또 처음 박달대게로 판명되었다 하더라도, 장기간 수족관에서 살다 보면 절로 살이 내린 탓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어떤 아주머니는 박달대게를 먹는데도 복불복이 따라야 한다며 환하게 웃는다. 박달대게로 판명이 나면 대게의 다리에 녹색 명찰을 일괄적으로 단다. 이는 소비자를 위한 것으로 올해는 녹색이다. 매년 빨강이나 노랑 등으로 정해 그 색깔을 달리한다.

어선에서 일차로 선별작업을 마친 대게를 재차 크기별로 나눈다. 일사불란한 손놀림에 순식간에 바닥은 박달대게로 가득하다. 대게의 경매를 관전하는 것은 우주인들의 세계를 살짝 엿보는 것만 같다. 경매사가 “아~우~”하는 소리를 내며 쇠막대를 동에서부터 서쪽으로 쭉 훑으면 끝이다. 이날 박달대게 최상품은 14만원 내외에서 낙찰되었다. 한때 20만원을 호가한 것에 비하면 다소 내린 편이다. 옆에 섰던 아주머니는 우리나라 유통구조가 경매가가 곧장 소비자가격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되는지는 의문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대게를 받느라 주인아주머니의 손길도 분주해진다.
대게를 받느라 주인아주머니의 손길도 분주해진다.

대게는 일반 서민들이 접하여 즐기기에는 만만찮은 가격이다. 따라서 호주머니가 가벼운 일부 소비자는 홍게 또는 킹크랩이나 러시아산 대게로 눈을 돌린다. 그도 아니면 두 개 이상의 발이 떨어지거나 정품이 들지 못한 B품(시장의 아주머니는 이를 두고 미달이라고 하자 규격미달이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손사래에 큰일 날 소리라며 앞으로는 꼭 B품이라 불러 달란다)을 찾기도 한다. 간혹 날것을 어떻게 먹어요! 하고 걱정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주위를 둘러서 초장집이 더러 있다. 초장집을 찾아 정해진 수수료를 내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도록 요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킹크랩이나 러시아산 대게는 무게로 가격을 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속을 염려는 없다. 하지만 특별하게 나선 걸음이라면 지갑을 열어 별미인 영덕대게를 맛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날 러시아산 대게는 1Kg당 6만원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영덕대게는 일 년을 통틀어 무한정 잡을 수가 없다. 6월부터 약 6개월간은 영덕대게의 어족자원 고갈을 위해 금어기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제철인 영덕대게를 즐기려면 올해의 경우 4월이나 5월 중으로 가는 것이 현명할 듯싶다.

영덕대게로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졌다면 동해안 산책도 꽤 낭만적이다. 대게의 거리를 벗어나면 곧장 바닷가로 ‘영덕대게로’다. ‘영덕대게로’를 따라 동해안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간간이 카페를 겸한 커피집이 보인다. 어느 카페나 커피집을 택하든 동해안 특유의 푸른 바다의 서정에 젖어 들 수가 있다. 밝고 맑게 내려놓은 햇살 아래 은비늘이 너울너울 춤추고, 눈을 찔러오는 듯 반짝이는 윤슬을 감상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봄의 품에 오롯이 안긴 나를 발견한다. 다시 동해안을 따라서 5~10여 분을 거슬러 오르면 곧장 해맞이공원이 나타난다. 여기서 왼쪽,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서 오르면 영덕 풍력발전소다. ‘잘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하고 반기는 듯 풍력발전기의 커다란 날개가 ‘윙윙’거리며 종일토록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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