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행상의 애환, 그 불편과 동정
지하철 행상의 애환, 그 불편과 동정
  • 배소일 기자
  • 승인 2021.06.30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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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다음 칸은 있다
대명역에서 김 모 씨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박미정 기자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지하철. 거기에도 잡상인이라 불리는 우리 이웃이 있다. 박미정 기자

 

지난 29일 대구 지하철 1호선 명덕역에서 '설화명곡행'​을 탔다. ​자리가 듬성듬성했다. ​현충역 쯤에서 한 아저씨가 가방을 들고 타더니 ​헛기침 몇 번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나선 이유는 가시는 걸음에 좋은 물건 하나 소개 드리고자 합니다. 물건 보여 드리겠습니다. 자~ 플라스틱 머리에 솔 달려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칫솔입니다"

​"이걸 뭐 할려고 가지고 나왔을까요? 팔려고 나왔습니다. ​​아시아 100대 상품에 선정된 케어크린 칫솔 한 개에 200원씩 다섯 개 묶여 있습니다, 얼마일까요? ​천 원입니다. 뒷면 돌려보겠습니다 영어 써 있습니다. '메이드인코리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 되었을까요? 당연히 망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한 개씩 돌려 보겠습니다"

​그는 칫솔 묶음 하나씩을 승객 무릎에 올렸지만,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칫솔을 다 돌린 아저씨가 다시 말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과연 몇 개나 팔렸는지 궁금했다. 팔리지 않은 칫솔 회수가 끝난 후, 

​"자 여러분, 칫솔 4개 팔았습니다. 얼마 벌었을까요? 몽땅 4천 원 벌었습니다. ​​원가 2천 원 빼면 2천 원 벌었지요. 제가 실망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예. 실망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포기하겠습니까? ​절대로 안 합니다. 저는 바로 다음 칸으로 갑니다!“

아저씨는 가방을 들고 유유히 다음 칸으로 가버렸지만. 코믹한 언변에 유쾌해진 승객들은 '한 개라도 팔아줄 껄' 후회의 표정이 역력했고 '다음 칸에서는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그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바랬다.

단속으로 쫓겨난 A씨는 "우리같은 잡상인은 언젠가 사라져야겠지만, 경제 상황이 나쁜 지금은 때가 아니지 않느냐. 당장 먹고 살기가 막막해져 어떻게라도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의지를 짓밟지 말았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콧등이 찡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