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8대 명당인 광주 이씨 이당(李唐)공 묘소
조선 8대 명당인 광주 이씨 이당(李唐)공 묘소
  • 예윤희 기자
  • 승인 2020.07.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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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8대 명당이라는 광주이씨 시조공의 묘터
목숨 걸고 친구를 지켜준 천곡과 둔촌의 우정 이야기
광주이씨 이당 공의 묘소.  예윤희 기자
광주이씨 이당 공의 묘소. 윗쪽 묘는 천곡의 어머니 영천이씨 묘소., 예윤희 기자
네 번째 세운 묘비. 예윤희 기자
네 번째 세운 묘비. 예윤희 기자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나현)에 위치한 광주이씨 시조 이당(李唐)공 묘소는 조선 8대 명당이라는 곳이다.

고려 말 과거에 같이 급제한 둔촌 이집과 천곡 최원도는 서로를 아끼고 도우며 나라일에 정성을 다했다. 그런데 개혁가인 신돈의 폭정이 시작되면서 이들은 폭정에 반감을 가지고 불만을 나타내다가 벼슬자리를 내놓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간다. 둔촌은 경기도 광주로, 천곡은 고향 영천으로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온 뒤에도 둔촌은 이웃에 사는 채판서란 자에게 신돈의 전횡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밀이 신돈의 귀에 들어가서 큰 화를 자초하게 되었다. 곧 닥쳐올 화를 예견한 둔촌은 아버지 이당을 모시고 숨어살 곳을 찾아 피신을 한다. 낮에는 남의 논에 띌가 염려하여 숨어 지내다 밤에는 길을 걸어 몇 달이 걸려 찾아간 곳은 둘도 없는 친구인 천곡이 있는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은 천곡의 생일날. 많은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이던 천곡은 찾아온 친구를 반가기는 커녕 매몰차게 몰아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어이없이 쫓겨난 둔촌은 일단 근처의 대밭에 몸을 숨긴다.

밤이 이슥하자 찾아온 천곡이 둔촌 부자를 사랑에 데리고 가 다락에 숨게 한다. 그 후 천곡은 미친 척하며 밥도 많이 달라하고 빨래도 더 많이 내 놓는다. 세월이 흘러 이런 이상한 행동을 의심한 안방 마님은 여종 제비를 시켜 지켜보게 한다. 문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제비의 눈에 세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고 이들은 다름 아닌 관아에서 뒤를 쫓고 있는 둔촌 부자였다.

안방마님의 성화에 멸문지화를 모면할 방책으로 천곡은 부인의 혀밑 혈점에 침을 놓아 부인을 벙어리로 만든다.

그리고 여종 제비를 불러 “너만 믿는다”고 했다. 고민하던 제비는 집 앞 양지바른 언덕에 있는 소나무에 목을 매고 자결한다. 관원에게 잡히면 비밀을 지키기가 힘들었나 보다. 천곡은 제비를 정중히 장사지내 주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듬해 둔촌의 아버지 이당 공이 돌아가시자 둔촌이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 지낼 수 없을 안 천곡은 자기가 죽은 것처럼 소문을 내고 친구의 부친을 자기가 묻힐 자리에 장례를 치르도록 해준다. 바로 위에는 자기 어머니 무덤이 있고 그 아래는 광주이씨 이당 공 묘소가 위 아래로 나란히 있는 연유이다. 그 후 천곡은 고향을 떠났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

그 후 고향 경기도 광주로 돌아간 둔촌은 일가를 이루고 살며 조선시대에는 한 집에서 이극돈을 비롯한 5형제가 과거에 급제하는 명문 집안으로 부상한다.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번창하여 모두 높은 벼슬에 올랐을 때 묘사를 지내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떡시루와 솥사이에 붙여놓은 옆구리가 자꾸 터져서 어른에게 사실을 알렸는데 그중에 나이 많은 문중어른께서 우리만 좋자고 하는 일이 되어서 되겠나 하시며 집사를 불러 저 산자락에 조그마한 묘가 하나 있을 것이다. 그곳에 먼저 주과포를 준비해 먼저 제사를 지내고 해봐라 하시는 지시에 가서 보니 정말 조그만 무덤이 있는지라 벌초를 하고 묘역을 깨끗이 한다음 정갈하게 제수를 마련하고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 떡을 하였는데 정말 거짓말같이 떡이 잘 되었다고 한다. 묘사를 파하고 난다음 어른에게 그 묘가 누구 묘인지 물었더니 옛 이야기를 상세하게 해주었으며 지금도 묘사를 지내기 전에 꼭 제비낭자 묘에 먼저 제사를 지내준다고 한다. 지금은 그 묘앞에 燕娥塚(연아총--제비 낭자의 무덤)이란 돌이 서있다.

이수성 국무총리가 이 집안 후손이라 한다.

이 산소에는 목숨을 건 두 친구의 이런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리고 매년 음력 10월 10일에는 양가에서 모여 같이 묘사를 지내면서 상대방의 묘소에도 잔을 올린다고 한다. 이곳에 계시는 이당 공을 시조로 그 후대에 많은 정승 판서들을 배출한 명문 거족으로 성장한 가문을 영천최씨 천곡 최원도 선생 덕분으로 여기며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목숨을 걸고 친구를 지켜줄 친구가 몇 이나 될까?

같이간 청도문화원의 우리문화바로알기 답사팀 일행은 이기주의로 물든 오늘날 우리 모두가 배우고 실천해야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고개 마루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명당 쪽을 향해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를 되새기고 돌아왔다.

연아촟 돌비석. 예윤희 기자
연아총 돌비석. 예윤희 기자

 

묘소 아래 있는 추원재. 예윤희 기자.
묘소 아래 있는 추원재. 예윤희 기자.
추원재 현판. 예윤희 기자
추원재 현판. 예윤희 기자
추원재 입구에 있는 묘소 묘각 현황. 예윤희 기자
추원재 입구에 있는 묘소 묘각 연혁. 예윤희 기자
행사때 사용하는 치알 고리(팩)도 돌로 만들어 이색적이다.  예윤희 기자
행사때 사용하는 치알 고리(팩)도 돌로 만들어 이색적이다. 예윤희 기자

 

추원재 뒤의 이당 공 묘소. 얘윤희 기자
추원재 뒤의 이당 공 묘소. 얘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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