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장님은 만물상회 주인
(12) 이장님은 만물상회 주인
  • 예윤희 기자
  • 승인 2020.07.27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집집마다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복잡한 물건들
시골에서는 뭐든지 모두 필요해
자원 재활용과 절약에 도움줘

경로당이 폐쇄되어 할매들이 정자에서 시간을 보낸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오후인데도 날씨가 서늘하다. 하루빨리 경로당 폐쇄가 해제돼서 방에 들어가시면 보일러를 돌려 따뜻하게 해드리고 싶다.

며칠 전 비가 오는 날인데 어떻게 계시나 싶어 회관으로 나가봤다. 어느 분이 삶아온 것인지 감자를 드시고 계시는데 모두들 추워 보였다.

‘아! 그렇지!’

얼마 전에 경산에서 스카우트 수품점을 하던 친구가 점포를 정리하면서 이것저것 챙겨준 물품들 중에서 잠바 생각이 났다. 예전에 팔던 물품인데 스카우트 명칭이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에서 보이를 빼고 그냥 <한국스카우트연맹>으로 바뀌면서 미처 팔지 못한 잠바가 그대로 있어 모두 가지고 왔다.

할매들에게 나누어준 스카우트 잠바.  예윤희 기자
할매들에게 나누어준 스카우트 잠바. 예윤희 기자

모두 12벌인데 두 벌은 이미 처리하고 열 벌이 남아 있었다. 오늘 모인 할매들이 꼭 열 분이라 안성맞춤이다.

색깔이 너무 고와 안 입으실 줄 알았는데 모두들 오히려 곱다고 좋아하신다.

옷을 입은 김에 치매예방체조도 한번 했다.

저녁을 사 준다고 중국집에 전화를 하라고 하는데 나는 약속이 있다고 하고선 자리를 피했다.

 

귀촌 후 얼마 안 되어 대구에 계시는 고모님께서 산림조합에서 산림벌채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잠바를 많이 보내 주셨다.

그때도 마을 남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드렸는데 모두들 일철에 입고 다니신다. 부역을 할 때도 입고 나와 마을 유니폼이라고들 하신다.

우리 마을 남자들에게 나누어준 옷.  예윤희 기자
우리 마을 남자들에게 나누어준 옷. 예윤희 기자

그때 장화도 많이 가지고 와서 처음에는 돈을 받아 고모님 용돈으로 드리려고 했는데 돈을 받지 말라고 하셔서 그냥 나누어 준적이 있었다.

옷뿐만이 아니다.

읍내에 나가니 자두를 담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용기가 크기가 맞지 않아 그냥 둔 것을 보고 얻어 왔더니 너도나도 쓸모가 있다고 달라고 하신다.

언젠가 경로당 프로그램 강사 한 분이 계란판에 탁구공 5개를 넣고 한 번에 한 칸씩 옮기는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계란판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어딘가 쓸 곳이 있을 것이다.

귀촌을 하고 마을에서 새마을문고 회장을 맡으라고 해서 맡았는데 책을 보관할 곳이 마땅찮던 시기에 맡게 되어 창고를 지어 작은 도서관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소문을 내니 전국의 지인들이 책을 보내주신다. 의흥예씨 대종회 회장님도 좋은 책을 몇 권 보내주시고, 문화원에서 만난 고향이 옆동네인 수원대 교수님도 자기 저서를 한 박스 보내주셨다.

본지 기자이시고 내 스카우트 멘토이신 김영창 기자님도 책을 여러 박스 보내 주신일도 있다.

본지 김영창 기자가 보내주신 가방을 김천의 모임에 전달하고 하나는 내가 사용중.  예윤희 기자
본지 김영창 기자가 보내주신 가방을 김천의 모임에 전달하고 하나는 내가 사용중. 예윤희 기자

책뿐만이 아니라 가방도 30개나 보내 주셨다. 가방은 김천에 살 때 만든 모임의 회원들이 공부하러 다니면서 교재를 넣도록 보내 주었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크게 들었다. 멘토이신 김영창 기자님께는 농사지은 쌀을 조금 드렸다.

지난해에는 대구 살다 부산으로 이사 가시는 분이 책장을 버린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가 책장 가지러 가자고 해서 따라 갔다. 남편이 관심있게 모은 한국미술 5천년 전집과 브리태니커 사전(영문판) 23권 등 귀한 책들이 있어서 모두 가지고 왔다. 부산으로 가지고 갈까 말까 하던 병풍 3개와 카펫 3장도 얻어왔다. 그림도 모두 버리려고 구청에서 폐기물처리 딱지를 붙여 놓은 것을 일단 우리 집으로 모두 옮겨 놓았다.

고물상으로 가기 직전에 나를 만나 아직도 살아있는 한국미술 5천년 전집. 예윤희 기자.
고물상으로 가기 직전에 나를 만나 아직도 살아있는 한국미술 5천년 전집. 예윤희 기자.

 

지난해 문화원에서 바자회를 하는데 그림 한 점을 내 놓았는데 모두들 관심을 가지는 좋은 그림이었다.

그때 얻은 책장도 원목으로 만든 고급이라 그곳에 꽂힌 책들이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책장 주인에게 복숭아도 몇 상자 보내고 올해는 쪽파를 다듬어 보내 드렸더니 아직도 잊지 않고 보내준다고 고마운 인사를 들었다.

신문지도 보는 대로 모으고 있다. 지금 구독하는 신문이 매일신문, 불교신문, 새마을신문, 농민신문 등 몇 가지되어 우리 집에는 신문지가 많은데 다른 집에서는 신문지가 귀해 신문지를 얻으러 가끔 온다. 그래서 자주 가는 문화원에서도 얻어오고 한번은 새마을 사무국에 들리니 신문이 많아 이야기하고 한 아름 얻어와서 봄 모내기 상자에 넣도록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보고난 신문도 시골에서는 귀한 것이다. 에윤희 기자
보고난 신문도 시골에서는 귀한 것이다. 에윤희 기자

아들이 큰 광고사를 하는 향교의 감사님은 현수막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쓰라고 두 뭉치나 가지고 오셨다. 하나의 길이가 5km나 되는 긴 끈이었다. 고추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드려 고추 묶는 끈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현수막 만들고 남은 자투리끈. 예윤희 기자
현수막 만들고 남은 자투리끈. 예윤희 기자

시골에 살아보니 뭐든지 다 필요했다.

자원재활용이 따로 없다. 이리저리 다니다 쓸모 있는 것은 모두 얻어오거나 주워와서 나누어 쓴다.

사무실 정리하던 친구가 버리는 사무용 봉투도 얻어왔다. 이장을 하면서 나누어 주는 각종 안내서를 넣도록 하니 모두들 좋아하신다.

이런 사무용 봉투를 500장 정도 얻어 잘 쓰고 있다. 예윤희 기자
이런 사무용 봉투를 500장 정도 얻어 잘 쓰고 있다. 예윤희 기자

"우리 이장님은 만물상회 주인이야!"

버리자니 아깝고, 집에 있으면 복잡한 것은 나처럼 재활용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예윤희 기자 yeayh@naver.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