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인의 '부부'
김아인의 '부부'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3.11 11:3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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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지에서 만난 부부

 

김아인의  '부부'

 

계곡을 채운 바람소리가 청량하다. 끌어안고 있던 근심들이 씻겨간다. 어둠이 핥고 지나간 풀냄새를 맡으며 동트기 전에 오른다. 상상의 여지가 많은 묽은 풍경이 좋다. 어느 부분을 오려도 한 폭의 수묵화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림이다. 짙은 안개가 하늘과 산의 경계를 지운다. 살다보면 가끔은 내 삶의 경계도 말끔히 지우고 싶을 때가 있다. 한 장의 백지가 돼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일 게다. 이슬에 젖은 흙이 신발밑창에 달라붙는다. 그 찐득한 힘이 적잖은 무게감으로 전달된다. 어쩌면 나야말로 남편의 인생에 들러붙은 찰흙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칠 때 나뭇가지에 앉았던 어둠이 마지막 몸을 턴다.

명예퇴직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우리에겐 반갑잖은 소식이었다. 서른두 해를 평교사로 봉직한 남편은 일찌감치 마음의 준비를 한 것 같았다. 낌새를 느낀 나는 아직 이르다며 말리느라 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결혼은 물론 작은애는 직장도 잡지 못해서 뒷바라지를 해주던 터라 ‘명퇴’란 말만 나오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그가 덜컥 신청을 해버렸고 날마다 휴일이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수고했다는 인사는커녕 그이의 판단을 존중해 줄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아내 의견을 무시한 결정이 섭섭해서 온갖 모진 표현을 동원하여 바가지를 긁었다. 젊음을 다 바친 일터를 떠나는 심정이 어떠할지는 내가 알 바 아니란 듯 준비 안 된 마음이 난폭해졌다. 팽 토라져 모로 누운 여름밤은 쓸데없이 길기만 했다.

우리 부부는 등산이 취미다. 산에서만큼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낯선 산을 타다보면 출발점이 멀어질수록 힘든 여정이 길어질수록 정상에 대한 기대감은 커진다. 그런데 막상 정상이란 데 올라서보면 그 산이 그 산 같다. 인생의 정상이 어디인지 몰라도 비슷한 맥락일지 모르겠다. 단순히 밥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가장이 무직이 된다는 사실이 불안했다. 불안을 떨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양 몇 날 며칠 골질만 부렸다. 그때마다 남편이 배낭을 챙겨 나를 데리고 나섰다. 생각이란 벽돌에 눌려 마른침만 삼킨 밤을 보내고도 울창한 숲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보면 불통이 소통으로 바뀌어갔다. 한껏 격앙되었던 감정이 누그러졌다. 자연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모자 끝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는 사이 삶의 자잘한 마찰들은 별것 아닌 것이 되었다.

‘큰 집 천간이 있다 해도 밤에 눕는 곳은 여덟 자뿐이요. 좋은 논밭이 만경이 되어도 하루 먹는 것은 두 되뿐이다.’ 명심보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물질적 풍요가 중요하나 정신적 여유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일 게다. ‘그래, 이미 엎질러진 물 어떻게든 되겠지. 여기서 더 반목하고 대립한들 달라질 게 뭐람.’ 그리 생각하자 부질없는 미련이 제풀에 꺾였다. 객쩍어진 나를 내가 다독였다. 삼십 년 넘게 지켜봤지만 그는 결코 인생의 계산기를 옹골지게 두드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허투루 막살지도 않았으니 나름대로의 현명한 셈법이 있겠지, 그렇게 그냥 믿어보는 방향으로 내 마음을 돌렸다.

진달래와 철쭉이 자리바꿈을 했다. 그이가 나온 자리에도 누군가가 대신 앉았으리라. 걱정이란 콩나물처럼 쉽게 자라는 속성을 지녔을까. 아직 남편 퇴직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어머님은 당신 아들을 청춘으로 믿고 계신데 실망을 서둘러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서 미루고 있다. 한 가정을 일구느라 젊음을 소진한 사람이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짠하다. 미처 내가 눈치 못 챈 그이만의 힘듦이 있었을지 모르는데 그 속을 헤아리기는커녕 물색없이 아집을 부렸나싶어 뒤늦은 미안감이 생긴다.

새벽밥을 짓지 않아서 좋고, 와이셔츠 다림질을 하지 않아서 좋고, 현관에 쪼그려 앉아 구두를 닦지 않아서 좋다. 마음을 바꾸니 여유라는 이름의 휴가를 받은 것 같다. 적당히 나른하고 적당히 느슨한 지금이 나쁘지 않은데 왜 처음부터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이제는 오히려 남편이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핀다. 강하게 밀어붙인 그 자신감은 어디 갔는지 바쁜 일도 없이 허겁지겁 밥을 먹고 빈 그릇을 싱크대에 갖다놓는가 하면 커피 물까지 올린다. 자상한 남의 남편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친절은 오히려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숲이라는 무대는 참 묘하다. 다층적으로 펼쳐진 능선들이 평화롭다. 올망졸망 식솔을 거느린 족두리풀이 반긴다. 산에는 내가 몰라본 선물들이 많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그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그이가 숨을 고르며 목을 축일 때 곱슬머리가 반짝인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허옇다. ‘언제 저리 되었지?’ 내가 먹는 나이의 속도감에 지쳐 남편의 일신을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발원지에서 너무 멀리 흘러온 물줄기처럼 인정하기 싫지만 어느덧 우리는 인생의 내리막길에 든 셈인가보다.

오늘 집에 가면 그동안 쑥스러워서 못했던 말들로 자분자분 늦은 대화라도 나누련다. 진정 원하는 취미활동 하면서 마음 편히 지내라고, 연금도 당신 보수니까 눈치 보지 말라고, 혀 밑에 눌러둔 말을 꺼낼 때가 된 것 같다. 주어진 몫의 임무를 탈 없이 마무리해준 것만도 충분히 고맙지 않은가. 종종거리며 달려온 속도를 내려놓고 마음의 보폭 맞추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저만치 앞서가는 생각 너머로 복잡했던 내일의 염려가 단순해진다. 두렵던 삶의 지점들이 비로소 새롭게 보인다.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은 미지의 풍경이 궁금할 뿐이다.

 

수필집 『브래지어를 풀다』 학이사. 2017. 12. 25.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그 울타리 안에서 자식 낳아 키우며 함께 밥을 가장 많이 먹고, 함께 잠을 가장 많이 자고, 끝장낼 듯이 싸우다가도 아프면 제일 먼저 약국 뛰어가는 사이입니다. 세상에 없는 세상을 건설하는 영원한 동업자이자 칼로 물을 베는 운명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관계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인 거라고 하지요.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애정은 애증으로 바뀌었지만 미지의 풍경을 기대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우리의 이름은 부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