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완의 ‘산딸기’
양재완의 ‘산딸기’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5.13 07:4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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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완의 ‘산딸기’

 

며칠 전에 갔던 팔공산 산행에서 빠뜨린 코스가 있어 혼자 나섰다. '왕건5길'로 백안삼거리부터 평광 버스종점까지다. 날씨는 더웠으나 한 번 왔던 길이라 난코스인 ‘깔딱재’와 ‘돼지코’ 지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등산로 양편에 산딸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새큼달큼한 것을 따 먹다보니 아내 생각이 났다. 왔던 길로 되짚어 내려가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땄다. 예쁜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산딸기도 가시덤불 속에 많이 열려있었다. 맛있게 먹을 아내 얼굴이 떠올라 가시를 헤집는 손놀림이 더 빨라졌다. 신혼 시절, 처가 뒷산에서 손이 긁혀가며 가시넝쿨 속의 산딸기를 따 주면 아내는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했다. 덤불 속으로 넘어지면서도 손에 들고 있던 산딸기는 놓치지 않았던 추억들이 새삼 돋아났다.

산딸기 담을 그릇이 마땅치 않아 점심 후 먹으려고 가져온 수박 그릇에 담기로 했다. 평소에도 혼자서 등산을 자주 다닌다. 점심 준비는 간단히 떡, 과일, 생수와 캔 맥주 하나 정도다. 오늘은 마침 수박을 담아 왔는데 그 밀폐 용기가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산딸기를 따 담으며 가다보니 내려갈 지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코스는 처음이지만 팔공산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 있다고 생각하여 어림짐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허나 그게 아니었다. 하산할 길은 보이지 않고 능선만 끝없이 펼쳐졌다. 굽이진 능선을 따라가면 나오겠지 하고 가보면 또 다른 능선이 뻗친다. 이러다간 종일 걷겠다싶어 되돌아 나오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이 지나왔는지 좀체 내려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능선만 오가기를 서너 차례, 결국엔 왔던 길로 돌아섰다. 세 시간 정도 예상한 산행인데 이미 두 시간 넘게 걸었어도 아직 산 위에서 맴도는 신세가 됐다.

산딸기에 정신이 팔려 지나온 지점들을 눈여겨보지 않은 탓이다. 아니, 올라올 때는 분명히 외길로 된 능선이었다. 작은 방심이 화를 부른 것인가. 올라올 때의 그 길이 아니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싶어 초조한 마음이 엄습했다. 난생처음 119에 전화를 걸었다. 산속에서 길을 못 찾고 있다 했더니 있는 지점이 어디냐고 물었다. 골이 깊어선지 신고자의 현 위치가 표시되지 않는다며 등산로가 있나 찾아보라고 했다. 주위를 살피자 사람들이 지나다닌 희미한 흔적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지만 내가 갈 길은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 한편으로 대구 근교인데 별일이야 있겠냐하는 여유가 남아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골짜기가 보여 하산길인가 하고 내려가면 나무넝쿨이 앞을 가렸다. ‘요것만 헤쳐 나가면 되겠지’ 하고 내려갈수록 넝쿨만 무성하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위로 되올라왔다. 마치 블랙홀처럼 도무지 탈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배가 고팠다. 능선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소나무가지에 걸터앉았다. 아까 남겨둔 수박과 맥주로 일단 갈증부터 풀었다. 조급한 마음에 떡은 먹는 둥 만 둥 하고 다시 길 찾기에 나섰다. 산딸기는 손도 대지 않았다. 맛있게 먹을 아내 모습을 그리며 밀폐 용기 뚜껑을 야무지게 닫았다.

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여기로 가면 될 것 같아서 가보면 아니고, 저기로 가도 아니다. 주선해 놓은 저녁 동창모임에 맞춰 산행 시간을 계산했는데 낭패다. 비슷한 능선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아래쪽에 고속도로가 보였다. 곧장 그 방향만 보며 길을 잡았다. 짧은 소매의 팔은 가시에 긁힌 흔적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게 무슨 대수이랴, 빨리 산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헤맨 지 세 시간 여 만에 시멘트로 만든 배수구를 만났다. 그걸 따라 내려가니 이번엔 높은 둔덕이 앞을 막았다. 안간힘을 내어 올라서자 비로소 고속도로다. 대구에서 포항 가는 방향으로 목적지와는 반대편이었다. 도로 옆 펜스에 기대어 119에 다시 전화를 걸어 현 상황을 설명했다. 잠시 후 긴급구호차가 왔다. 바빠서 목적지까진 모실 수 없다며 도로 옆 비상구를 통해 일반도로로 연결되는 초입까지만 안내해주었다.

포장길을 걷는데 갈증이 확 몰려왔다. 산동네라 구멍가게도 없었다. 배낭에 든 건 산딸기 뿐, 몇 번이나 유혹했다. 그때마다 좋아할 아내 얼굴을 떠올리며 참았다.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 넘게 소요하고서야 귀가를 했다. 산딸기부터 내놓았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시큰둥하다. 이상하다싶어 밀폐 용기 속을 봤더니 딸기 본연의 형체가 아니다. 반은 물이 돼있고 모양도 거의 으깨져버렸다. 더운 날씨에 배낭 속에서 출렁이다 곤죽이 된 것이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딸 때의 심정으로 다시 내미니 마지못해 한두 개 집어 먹곤 그만이다. 온갖 고생과 갈증을 참으며 가져온 산딸기 꼴이 그 모양이라 더 먹으란 소리도 못 하고 기가 막혔다.

서재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산에서 길을 못 찾아 헤매며 목말랐던 생각은 없어지고, 좋아하는 산딸기를 마지못해 입에 넣던 아내의 표정만 자꾸 떠올랐다. 집에 있자니 울화통이 터졌다. 이미 늦어버린 모임에 간다고 나오면서 현관에 있는 죄 없는 신발을 걷어찼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이었으나 아내는 산에서 고생한 일 때문에 그러려니,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기반성이랄까.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조차 무시한 나를 자책했다. 아내가 좋아하리라는 마음 하나였는데, 그럼에도 산딸기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으니 곤혹스럽기만 한 하루였다.

 

“선수필” 2019년 봄호. 신인상 당선작

 

봉무공원 오름길에서 산딸기를 봤습니다. 초록 잎이 접시인 양 빨간 딸기가 앙증맞게 담겨있었습니다. 별안간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안 가득히 침이 고였습니다.

양재완 작가의 '산딸기'는 일진 사나운 날의 아찔한 에피소드입니다. 개가 꼬리 흔들기에 집중하면 앞으로 못 나간다는 말이 있지요. 자칫 위험천만한 산행이 될 뻔했습니다. 아내 사랑이 지극해서 벌어진 일이군요. 신혼 시절, 맛있게 먹던 아내 모습이 조건반사로 작용하여 가시덤불을 헤집고 산딸기를 따왔습니다. 아뿔싸! 으깨져버린 딸기처럼 작가의 마음까지 으깨져버렸네요. 애먼 신발을 걷어찬 행위가 속상함을 대변합니다. 아내가 곤죽이 된 딸기물이라도 맛있게 마셔주었다면 보람이란 보상을 챙길 수 있었을까요? 아니지요. 아내는 위험한 행동을 반복할까봐 차단한 것인지 모릅니다. '시큰둥'의 이면으로 아내의 지혜로움이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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