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유적지를 찾아-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역사와 문화유적지를 찾아-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 김영근 기자
  • 승인 2020.02.0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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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회 역사 문화탐방으로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선석사, 한개마을, 대구 달성서씨 시조 묘역 찾아가다

영덕이 고향이며 영덕중·고등학교 30기 동기 모임인 영우회(회장 이재활)는 지난 3일 10시부터 14시까지 역사 문화탐방으로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선석사, 한개마을, 대구 달성서씨 시조 묘역을 찾아갔다.

2018년까지 매월 모임을 하다가 지난해부터 2개월에 한 차례씩 둘째 월요일 저녁 시간에 모임을 한다. 올해 이번 모임은 이 회장이 차량 전세, 경비 전체를 부담하여 추진한 역사 문화탐방 시간으로 우리의 문화에 대하여 알아보고 선조들의 지혜와 얼을 되새기며 바른 역사관을 지니기 위해 이루어졌다.

회원들은 10시에 지하철 문양역에 모여 봉고를 이용하여 세종대왕자 태실, 선석사, 한개민속마을, 달성서씨시조묘역을 답사하였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사적 444호로 6명의 부인에 22명의 자녀가 있다. 태실은 모두 19기로 세종대왕의 적서 18 왕자 중 장자 문종을 제외한 17 왕자 태실 18기와 확인되지 않은 1기가 있다. 세종대왕의 손자 단종이 태어났을 때 조성한 태실 1기도 있다. 단종의 태실은 세자로 책봉된 후 성주 법림산에 새롭게 이전 조성되었다.

영우회원들이 김종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난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태실이 군집을 이룬 전국 최대의 태실로 조선 초기 태실 문화 연구, 태실 조성 방식의 시대적 변천을 확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다.

참석자들이 김종한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참석자들이 김종한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조선길(70, 수성구 황금동) 회원은 “이곳 세종대왕자 태실에 처음 와 보았다. 신기한 내용이 많다. 서울 근교에 있지 않고 이곳 먼 경상도에 만들어진 것이 이상하다. 평상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태실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어 마음이 기쁘다”라고 하였다.

김종한 성주군 문화해설사는 “이곳 세종대왕자 태실은 산세가 좋고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길지 중의 길지다. 전국에 다른 곳은 태실이 있는 곳이 없고 이곳에만 있다. 태실이 여기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유네스코에 등재를 위한 준비 중이다”고 하였다.

두 번째로 들린 곳은 신라 효소왕 1년(69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선석사이다.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소장 문화재는 성주 선석사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608호)이 있다.

참석 회원들이 선석사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참석 회원들이 선석사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 번째로 들린 한개민속마을은 조선 세종조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처음 입향하여 개척한 마을로 현재 그 후손들이 모여 사는 성산 이씨 집성 마을이다.

한 개 마을입구의 광대바위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다.
한 개 마을입구의 광대바위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다.

 

17세기부터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응와 이원조, 한주 이진상 등의 이름난 유학자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계 이승희 등의 인물이 나온 곳이다. 또한 마을의 전통 한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토속담이 잘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마을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잘 동화되어 있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마을이다.

성주대산리 진사댁을 둘러본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주대산리 진사댁을 둘러본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개라는 마을 이름은 예전에 이곳에 큰 개울 또는 나루가 있어 붙어진 것이다. 한은 크다, 개는 개울이나 나루를 의미하는 말로 한개는 곧 큰 개울, 큰 나루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에서 온 이름이다. 지형은 뒷산인 영취산 331.7m의 줄기가 마을을 감싸듯 청룡 등, 백룡 등으로 뻗어내리고, 마을 앞에는 백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어 영남 제1의 길지를 이루고 있다.

조상들의 생활 터전인 가옥의 형태도 전래적인 방법으로 지붕, 대청, 안방, 부엌, 뒷마루 등 거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주생활을 이루었던 가재도구나 유교적 생활공간 등 중요한 모습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최근에 국가지정 중요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재활 회장은 “전 회원이 참여하여 문화유적지를 찾아보는 시간으로 오늘 본 곳을 가족이나 후배에게 들려줄 내용이 많다. 회원이 모두 유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기쁘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다른 곳의 문화유적지를 같이 가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