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대표 선승 적명 스님, 空으로 돌아가다
한국불교 대표 선승 적명 스님, 空으로 돌아가다
  • 강효금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12.30 22:2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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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문경 봉암사에서 영결식과 다비식 거행
평생 선원과 토굴에서 참선 수행하며 한국불교의 대표 선승으로
동안거 중 불의의 사고로 입적
적명 스님과 마지막 인사를 고하기 위해 활짝 열린 산문을 따라 봉암사를 찾은 대중들
적명 스님과 마지막 인사를 고하기 위해 활짝 열린 산문을 따라 봉암사를 찾은 대중들   이원선 기자

 

불의의 사고로 입적한 적명 스님의 영결식이 지난 28일 문경 봉암사에서 거행됐다. 
적명 스님은 제주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나주 다보사에서 우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0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평생 토굴과 암자에서 수행해 온 스님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승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해인사와 통도사, 백양사, 수도암, 은해사 기기암 선원의 선원장, 전국 수좌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참선 수행도량인 봉암사에서 사찰의 큰 어른을 뜻하는 조실 요청을 마다하고 수좌로 지낸 일은 유명하다. 적명 스님은 조계종 종립 특별선원 봉암사 태고선원 수좌로, 봉암사를 수행중심 도량으로 만들어가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1967년 해인총림에 방장으로 취임한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을 통해 불교의 근본이 중도임을 정리하고, 현대 불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후 선풍이 일기 시작하자 28세의 나이로 해인사에 들어간 적명 스님은 가행정진에 들어갔고, 이후 평생 선방을 떠나지 않았다.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으로 스님들의 수행정진을 위해 '부처님 오신 날' 외에는 일체 외부인들의 출입이 제한해 온 봉암사는 적명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을 찾은 추도 대중들을 위해 산문을 열었다.

영결식에 이어 적명 스님의 법구는 봉암사 경내 성적당 앞에 마련된 영단에서 대웅보전을 지나 만장 행렬과 함께 봉암사에서 2km 정도 떨어진 희양산 자락 연화대로 옮겨졌다. “나무아미타불” 이 메아리가 되어 울리는 가운데 “스님, 불 들어갑니다!” 사부대중의 외침 속에 적명 스님의 법구는 空으로 돌아갔다.

 "불이성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혹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현실 세계가 바로 깨달음의 세계이고 대승불교· 선불교의 핵심"이라 이야기한 적명 스님의 가르침만이 여기 남았다.

 

문경 희양산에서 空으로 돌아가는 적명 스님의 다비식 광경     이원선 기자
문경 희양산에서 空으로 돌아가는 적명 스님의 다비식 광경             이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