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이르는 문,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하늘에 이르는 문,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 강효금 기자
  • 승인 2020.05.11 11:3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혼의 깊은 갈증을 느낄 때마다 길을 나선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원히 마르지 않는 물을 얻기를 청하며.
이 글은 그 길에서 만난 ‘거룩한 땅’에 대한 이야기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덤불 아래 신발을 벗고 자신을 내려놓았듯, 그 '거룩한 땅'에서 벌거벗은 나의 모습을 마주한다.

하늘에 이르는 문, 그 좁은 문

공주를 가로지르는 금강을 따라 놓인 무령왕릉과 공산성(公山城) 사이에 ‘황새바위 순교성지’가 있다. 공주 들머리 언덕에 위치한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회사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품은 곳이다. 조선시대 공주 감영의 처형장인 이곳에서 처형이 이루어지던 날, 공산성에 오른 많은 백성들은 자신의 이웃이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갈가리 찢겨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조선의 관리들은 그 ‘두려움’을 통해 백성을 통제하려 했고, 붉은 피로 땅을 적신 수많은 순교자들은 그 '좁은 문' 을 따라 난 길로 하늘을 향해 나아갔다.

 

순교탑 위의 십자가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이성호 작가 제공
순교탑 위의 십자가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이성호 작가 제공

 

순례자의 길에서 만난 몽마르뜨(순교자의 언덕). 거대한 순교탑과 무덤 경당, 그 옆으로 열두 개의 빛돌이 서 있다.

거대한 순교탑은 순교자들이 죽음의 순간에 마주했던 두 개의 칼을 형상화했다. 그 사이로 하늘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네가 지금 도려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끊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 탑이 내게 질문을 던진다.

 

순교탑과 마주 보고 세워진 소박한 무덤 경당.     이성호 작가 제공
순교탑과 마주 보고 세워진 소박한 무덤 경당.  이성호 작가 제공

 

 

돌무덤 주변 벽 위로 순교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이성호 작가 제공
돌무덤 주변 벽 위로 순교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이성호 작가 제공

 

무덤 경당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9)”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무덤 경당 아래에서 마주한 돌무덤은 부활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돌을 치워라” 죽음과 생명을 갈라놓은 큰 돌이 치워졌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예수의 단호하고 강력한 말에 무덤에 묻힌 라자로는 걸어 나왔다. 어둠을 지나 빛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왔다.

 

지하로 햇빛이 쏟아진다. 마치 부활의 기쁨을 이야기하듯.    이성호 작가 제공
무덤 경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무덤 속에서 라자로가 걸어나오는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성호 작가 제공

 

 

포승에 묶인 손. 수없이 내려친 채찍 자국.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그 암울한 순간, 그 깊은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은 잉태되고 있었다.    이성호 작가 제공
포승에 묶인 손. 수없이 내려친 채찍 자국.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그 암울한 순간, 그 깊은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은 잉태되고 있었다. 이성호 작가 제공

 

그를 내려친 채찍, 천주를 버리기만 하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유혹을 잘라낸 시간. 그 십자가의 길 끝자락에 새로운 생명의 시간이 잇닿아 있다.

 

부활 경당은 故 조부수 화가의 백도자판 벽화 4천여 점으로 채워져 있다.   이성호 작가 제공
부활 경당은 故 조부수 작가의 백도자판 벽화 4천여 점으로 채워져 있다. 이성호 작가 제공

 

부활 경당 안 십자가 부분.       이성호 작가 제공
부활 경당 안 십자가 부분. 이성호 작가 제공

 

무덤 경당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눈부시다. 부활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다른 삶이다. 그러하기에 예수를 그렇게 사랑하던 마리아 막달레나마저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다.

부활 경당. 그 부활의 이면에는 애간장을 녹이는 고통이, 자신을 내려놓는 처절한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

 

야외 제대. 빛돌에 새겨진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기억'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성호 작가 제공
야외 제대. 빛돌에 새겨진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기억'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성호 작가 제공

 

야외 제대, 다듬지 않은 제대를 열두 개의 빛돌이 에워싸고 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빛돌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을 만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빛 속에 살아있다.

봄꽃이 만발한 황새바위에서 그 봄꽃마저 칼처럼 날카로운 겨울바람을 뚫고 이 자리에 서있음을 느낀다. 그 빛나는 영광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 기사 안의 사진은 이성호 작가가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성호 작가

이성호 작가는…

경북 고령 출생

개인전으로

2019 가톨릭 성지, 1898갤러리, 서울

2017 정미소 프로젝트, 대심정미소복합문화공간, 예천

2016 空, 봉산문화회관, 대구

2015 空, 갤러리 나우, 서울

2012 청도 유등축제 초대전, 청도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