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선생의 교육정신을 톺아보다
퇴계 이황 선생의 교육정신을 톺아보다
  • 전용희 기자
  • 승인 2023.09.1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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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서원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교육관을 보다
11월 12일까지 주말에 좌우명 목판인출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몸가짐에 대한 수신십훈 가르침도 있어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백로인 9월 8일, 안동의 낮 기온 최고온도는 30도를 기록하였다. 소양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넓은 안동호를 끼고 있는 길을 따라 도산서원에 이르니 퇴계선생의 좌우명 목판인출체험 안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에서 지난 9월 2일부터 오는 11월 12일까지 매주 토, 일요일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는 특별 체험 프로그램이다. 퇴계 선생의 좌우명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신기독(愼基獨): [중용]에 있는 ‘홀로 있어도 늘 조심하라’는 뜻이다.

무자기(毋自欺): [대학]에 나오는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의미이다.

무불경(毋不敬): [예기]의 중심이 되는 말인 ‘항상 공경하는 태도를 유지해라’를 나타낸다.

사무사(思無邪): [논어]의 ‘간사한 생각을 품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도산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편 제일 앞쪽에 도산서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선생께서 직접 지은 건물로, 생전에 제자들을 몸소 가르치던 장소이다. 도산서원 안에서 선생이 살아계실 때 실제로 있었던 건물은 이를 포함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농운정사’ 그리고 ‘역락서재’이다.

퇴계 선생께서 살면서 몸소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이다.
퇴계 선생께서 살면서 몸소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이다.

서원의 중심이 되는 학문을 강론하던 곳인 ‘도산서원’이란 사액현판이 걸려 있는 전교당은 선생의 사후인 조선 선조 7년(1574)에 건립된 건물이다. 전교당을 포함한 광명실, 동‧서재, 장판각, 상덕사, 전사청, 고직사 등의 건물은 퇴계 사후에 지어진 건물이다.

서원의 중심이 되는 전교당으로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며, '도산서원' 사액현판이 게시되어 있다.
서원의 중심이 되는 전교당으로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며, '도산서원' 사액현판이 게시되어 있다.

서원을 돌아나오며 옥진각에 보관되어 있는 퇴계 선생의 유품들을 보았다. 진열된 유품들을 통하여 퇴계 이황 선생의 생애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퇴계 선생의 사상과 학문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많았으며, 그 내용도 많이 들어왔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문제점이 제기되는 시점에서, 기자는 특별히 퇴계 이황 선생의 삶에 나타난 교육정신에 관심이 있었다. <도의철학과 실천> 설명에서 선생이 평생 지녔던 정신의 일면을 알 수 있었다. 선생께서는 진리는 이론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지(知)와 행(行)의 일치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 기본이 되는 것이 성(誠)이요, 그에 대한 노력으로서 경(敬)이 있을 뿐이라 하였다. 말할 때나 움직일 때나 앉아 있을 때도 경해야 한다. 심신이 숙연해지고 표리가 하나로 되는 경지가 경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퇴계 선생의 교육관>에 의하면 정통적인 유학교육의 목적인 최고의 인격실현에 있고, 천인합인론에 입각한 우주의 인간론을 기반으로 중용에서의 적극적인 인간의지를 표현하고자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퇴계교육학에서의 경의협지(敬義夾持) 지행병진(知行竝進)의 원리는 자아성숙을 위한 통합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때의 자아는 보편적 자아이면서 특수적 자아로써 스스로 지각할 수 있어야 자기를 주체할 수 있다는 철학적 의미를 볼 수 있었다.

퇴계 선생이 남긴 교육에 대한 말씀은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니다.

배우는 사람의 공부 가운데 심신을 닦는 것보다 절실한 일은 없다.

진리가 가까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빼앗을 수 없는 뜻과, 꺾이지 않는 기상과 흐리지 않을 앎을 늘 지니도록 하라.

선생의 교육목적은 ‘남에게 내세우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완성을 위한 공부가 되어야 한다’라는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몸가짐에 대한 선생의 가르침인 <수신십훈>으로, 뜻을 세우라는 입지, 바른 모습을 항상 지키라는 경신,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유지하라는 치심, 책을 읽으라는 독서, 말을 이치에 맞게 하라는 발언, 행동을 바르고 곧게 하라는 제행, 부모님께 효도하는 등의 집안에서의 몸 가짐인 거가, 성실과 신의로 대하라는 사람과의 사귐에 대한 접인, 일을 처리하는 처사, 시험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응거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회였다.

과거 급제로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대제학을 거쳐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기까지, 칠십여 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 인격도야, 후진양성에 힘썼던 퇴계 이황 선생의 생애는 우리나라 교육과 사상의 한 줄기가 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표가 되었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