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의 충절이 살아 숨쉬는 신숭겸 유적지, 목백일홍이 붉다
왕건의 충절이 살아 숨쉬는 신숭겸 유적지, 목백일홍이 붉다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3.08.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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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 후백제와 태봉의 격전지로
신숭겸 장군의 충절이 깃든 곳
신숭겸유적지에 백일홍이 붉다. 박미정 기자
신숭겸유적지에 백일홍이 붉다. 박미정 기자

 

22일 대구 동구 지묘동에 위치한  신숭겸장군 유적지에 목백일홍이 붉게 피어 오가는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표충단의 400여년 된 배롱나무는 우국충절을 기리며, 신숭겸장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심어진 나무이다.

목백일홍이 아름다운 곳. 박미정 기자
목백일홍이 아름다운 곳. 박미정 기자

 

신숭겸유적지는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으로, 1981년 7월 1일 대구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신숭겸 유적지의 여름. 박미정 기자
신숭겸 유적지의 여름. 박미정 기자

 

신숭겸장군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 유적지는 문중에서 관리 운영을 맡고 있으며, 문중은 이곳을 시민들에게 상시 개방해 유적지를 둘러 볼 수 있도록 했다. 한 달 평균 1만여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 신숭겸장군의 넋을 기리고 있다. 

신숭겸 유적지 홍살문. 박미정 기자
신숭겸 유적지 홍살문. 박미정 기자

 

신숭겸은 서기 927년 위기에 처한 신라를 돕기 위해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대구 공산(公山)에서 싸웠으나 후백제군에게 패했다. 이 싸움에서 신숭겸은 왕건의 옷인 용포를 대신 입고 변장해 싸우다 전사했다. 신숭겸의 충절로 목숨을 건진 왕건은 목이 잘린 채 발견된 신숭겸을 애통히 여겨 시신이 발견된 곳에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었다. 하지만 지묘사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패사됐고, 1607년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옛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 표충단, 충렬비를 다시 건립했다. 고종 8년(1871)에 서원철폐령으로 또 한번 이곳은 패사됐지만, 후손들이 표충재를 새로 지어 현재까지 보존한 곳이 지금의 신숭겸장군의 유적지다.

김숭겸장군 유적지를 찾다. 박미정 기자
김숭겸장군 유적지를 찾다. 박미정 기자

 

신숭겸장군 유적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까지 문화해설사가 상시 근무 중이다. 문화해설사에 대한 단체예약 및 기타사항은 대구시관광협회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