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
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3.04.29 13:4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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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서 보험이나 예・적금 통장 등 서류를 뒤적이며 정리를 하는 나의 모습이 낯설다. 무언가 준비를 한다는 느낌이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다. 하지만 두 달 전의 황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 정도는 당연하다 싶다.

남편이 먼 길 여행을 떠났다.

토요일 새벽, 항암부작용으로 배뇨장애가 심해 입원을 하려고 구급차에 올랐다. 응급실에서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며 콧구멍에 산소 줄이 달리고, 연이어 소변 줄이 달렸다. 혈액과 심전도 등 몇몇 검사가 진행되는가 싶더니, 별안간 심폐소생술을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당황한 보호자 옆에서 헉! 하는 단말마와 함께 잠시 심장이 뛰는 것 같았으나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사위가 조용해지고 말았다.

응급실 도착 후 의사가 연명의료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다. “입원하러 왔는데, 무슨 말이냐”고 항변하듯 말했으나, 의사는 ‘환자라면, 그 정도는 미리 생각해 두었어야 된다’고 질책하는 것 같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생사가 달린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이른 새벽,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누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손아래 시누가 차분한 어조로 ‘편안하게 보내드리자’는 의견을 말해주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사망하셨습니다”라는 의사의 싸늘한 선고는 응급실 도착 한 시간 반 만에 내려졌다. ‘황망’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왔다.

상조회사와 장례식장 담당자 앞에서 낯설고 어려운 용어를 들으며,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사무적인 절차와 안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식장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하며, 장례 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지. 영정사진은커녕 부고를 전할 연락 범위조차 준비해 두지 못하고 있었다. 뭐가 뭔지 알지도 따지지도 못하는 사이 2박3일 장례절차는 한 줄기 바람처럼 훅 지나가 버렸다.

‘아픈 환자 앞에서 사후의 절차나 방법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면,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긴 사람은 누구나 죽고, 세상을 떠나는 데는 순서가 없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사망을 대비한 준비가 썩 유쾌한 일이 아닌 줄은 안다. 그러나 금기시할 일은 더욱 아닌 것 같다. 만약의 경우 슬기로운 대처를 위한 가벼운 방안이라도 마련해 두는 것이 좋겠다 싶다. 장례방법이나 절차 등에 대한 평소의 의지를 대화나 메모라도 해둘 수 있다면, 남은 가족이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부동산 관련 서류나 예・적금 통장, 가까운 친구나 지인 등의 연락처라도 공유할 수 있다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유언이나 유서를 미리 정리해놓는다는 이웃을 만났다. 가까운 지인은 부부가 함께 연명의료 거부의사를 병원에 등록해놓았다고 한다. 장기기증 서약을 해두었다는 친구도 있으니, 나의 무지와 우매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가정의 달을 앞두고, 가족들이 함께 모일 기회가 생겼다. 백세를 앞둔 부모님은 물론 형제자매 간에도 ‘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터놓고 이야기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