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죽음의 법률적 정의2
(6) 죽음의 법률적 정의2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4.0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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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安樂死)

죽음의 특수한 형태로 안락사(安樂死)가 있다.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다는 뜻이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편안히 죽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구구팔팔이삼사라는 구호가 나올만하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앓고 삼일 째 죽는다는 뜻이란다.

로마의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영웅 및 황제 12명의 전기를 담아 황제열전을 저술하였다. 여기에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고백이 나온다. “나는 아내의 팔에 안겨 빨리 그리고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이것이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의 시초가 되었다.

영어 euthanasia는 그리스어 euthanatos에서 유래한다. ‘좋다’'는 뜻의 'eu'죽음'을 뜻하는 'thanatos'가 결합된 말이다. 영어 mercy killing도 안락사의 뜻이지만 살인이란 의미가 강하다. 독일어 Sterbehilfe는 죽음에 대한 도움이란 뜻이다.

생명을 단축시키지 않고 편안하게 죽게 하는 것은 순수한 또는 진정한 안락사이다. 죽음의 고통 완화를 목적으로 진통제를 투여하는 경우이다.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키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경우를 가리킨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법적으로 많은 논쟁을 일으킨다.

안락사에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본인의 의사(요구) 여부에 따라 자발적 안락사와 강제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환자 본인의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자발적 안락사이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강제적 안락사이다.

자발적 안락사도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 요구에 의한 것은 의뢰적 안락사이다. “빨리 죽여 달라고 적극 요구한 경우이다.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나 소극적으로 승낙(동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승인적 안락사이다. 안락사를 실시하려는데 환자가 동의하는 경우이다.

강제적 안락사는 환자가 요구하거나 승낙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실시하는 경우이다.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실시하는 것은 반자발적 안락사이다.

환자 스스로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따라서 의사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무뇌아, 혼수상태, 식물인간, 중증의 치매, 정신장애 등 환자의 경우이다. 이 경우를 비자발적 안락사라고 한다. 크게 보면 강제적 안락사의 범주에 속한다.

<본인의 의사(요구) 여부에 따른 구분>

자발적

안락사

본인의

의사(요구)

적극으로 요구(의뢰적 안락사)

소극적으로 승낙(승인적 안락사)

강제적

안락사

본인의

의사(요구) ×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반자발적 안락사)

죽음의 의미와 선택 불가(비자발적 안락사)

 

다음, 안락사의 방법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의사가 적극적 행위를 통하여 직접 환자의 생명을 종결시켜 주는 것은 적극적 안락사이다. 극약을 투여하거나 혈관에 갑자기 많은 양의 공기를 주입하여 사망케 하는 경우이다.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의 진행을 일시적으로 저지하거나 연명할 수 있는데도 이를 조치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영양 공급, 약물 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이다. 부작위적 안락사라고도 한다.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와도 관계된다. 존엄사(death with dignity) 또는 자연사(natural death)는 회복의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무익한 연명조치를 계속하는 것을 멈추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행위이다. 생명연장을 위한 적극적인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극적 안락사와 유사하다.

그러나 안락사는 환자를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목적이고, 존엄사는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통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죽음을 원하는 경우는 안락사이다. 고통이 없지만 삶의 계속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여 연명을 중단시켜 달라고 하는 것은 존엄사이다.

이밖에 의사조력자살(physician assisted suicide, PAS) 또는 조력사망(assisted dying)이라는 것이 있다. 신체적 고통이 극심하여 의사가 처방하는 약물이나 기구를 사용하여 환자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행위이다.

미국의 잭 케보키언(Jack Kevorkian)'죽음의 의사(Dr. Death)'로 유명하다. 그는 환자의 죽을 권리를 주장하면서 스스로 타나트론(Thanatron)과 머시트론(Mercitron)이라는 자살기계를 발명하였다. 타나트론은 식염수, 전신마취제, 독극물을 주입하는 기계이다. 머시트론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일산화탄소를 흡입하게 하는 기계이다.

그는 이 기계들을 사용하여 약 130여명의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말기 환자에게 이 기계를 설치해주고 환자 스스로 스위치를 누르도록 한 것이다. 물론 사전에 진찰하여 그 상태가 정말 치료 불가능하고 죽음에의 의지가 확실한 경우에 실시하였다. 그는 직접 살인한 것은 아니지만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특히 스위스 취리히(Zürich)에는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안락사 전문병원이 있다. 조력자살 방식으로 말기 암 등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는다. 의사 등 타인이 독극물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강력한 수면제 등을 복용하거나 주사를 한다.

외국의 말기 환자들에게도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인도 다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으며, 이미 2명은 안락사를 택한 바 있다.

<안락사 방법에 따른 구분>

적극적

안락사

적극적 행위

(작위적 방법)

극약 투여로 생명 단축

소극적

안락사

소극적 행위

(부작위적 방법)

연명 행위 중단으로 생명 단축

의사

조력자살

타인의 도움을 받아 본인 스스로 안락사를 취함

 

기원전 4세기경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안락사를 반대하였다. 그는 "나는 누구에게도 독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권고하지도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토마스 모어(Thomas More),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등은 안락사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플라톤은 태생적으로 건강하지 않거나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하지 않는 게 옳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삶에서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없는 상태라면 살해되는 것이 생존하는 것보다 선하다고 하였다.

영국의 정치가인 토마스 모어는 그의 저 '유토피아'에서 불치의 병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는 자에게 안락사를 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틴 루터도 기형아 살해를 찬성했다.

반대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나 칸트(Kant)는 안락사를 반대하였다. 자연법원리를 강조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안락사는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비도덕적인 행위로 보았다.

도덕적 의무를 중시한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보며,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이유로 안락사를 반대하였다.

종교계에서는 생명 존중 입장에서 안락사를 반대한다. 안락사 반대 측에서는 안락사를 빙자하여 범죄에 악용하는 등의 생명 유린행위를 경계하고 있다.

나치 정권은 T4 작전에 따라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유대인, 집시 및 장애인에 대한 끔찍한 학살을 자행하였다. 그리고 단종법을 제정하여 신체, 정신상의 악질 유전이 있는 자의 생명을 말살하기도 하였다.

히틀러의 개인 주치의로서 수많은 사람을 안락사 시키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생체실험을 한 카를 브란트(Karl Brandt)의 악행은 역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안락사의 인정 여부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입장이 다르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도 이를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4년 하원에서 환자가 치료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을 통과시켰다. 영국에서는 환자들이 소송을 통해 안락사 허용 여부에 대해 사안별로 법적인 판단을 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적극적 안락사는 오리건 주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는 다른 일부 주에서도 허용되고 있다. 호주는 일부 연방 주에서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의료행위를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나머지 주들도 관습법상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안락사를 입법화하지 않았지만 법원 판례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1995년 요코하마 법원은 의식을 잃고 입원치료 중이던 환자를 안락사 시킨 여의사에게 살인죄의 유죄판결을 했다. 가족으로부터 연명치료 중단요청을 받고 호흡 유지 장치를 제거한 뒤 근육 이완제를 투여해 환자가 질식해 숨지도록 한 것이다.

이때 법원은 안락사의 4가지 조건을 명시했다. 환자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되고 죽음이 임박했으며 고통을 없앨 다른 수단이 없고 환자 본인이 명백히 안락사를 원할 경우에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97년 보라매 병원 사건에서이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가족의 요구에 의하여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다음 퇴원시킨 후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다. 법원은 가족에게는 살인죄, 퇴원을 허락한 의사에게는 살인방조죄 등의 유죄를 선고하였다.

의사는 퇴원하면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족에게 충분히 설명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퇴원 요구에 부득이하게 퇴원시키게 되었다. 퇴원 후 사망에 대해 법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귀가서약서까지 받았다.

이에 대법원은 환자가 퇴원하면 사망할 위험을 알면서도 가족의 요청에 따라 퇴원을 허용한 의사에게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른바 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환자의 퇴원’(discharge against medical advice : DAMA)이라는 이유이다.

의사는 환자와 가족의 입장 및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더 이상 치료비를 낼 수 없다는 가족의 강력한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무의미한 의료행위는 과잉진료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판결로 의사는 이 모든 원칙과 현실 상황을 무시한 채 치료행위를 계속해야만 했다. 의료 윤리와 원칙이 법원칙과 상충되는 점에 대한 의료계의 고민이 크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