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시니어] (207) ‘팔려가는 당나귀’에서 인생을 배운다
[원더풀 시니어] (207) ‘팔려가는 당나귀’에서 인생을 배운다
  • 김교환 기자
  • 승인 2023.03.0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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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작가의 우화집에 실린 ‘부자(父子)와 당나귀’란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팔려가는 당나귀’로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내다 팔기 위해 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마을을 지날 때 방물상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당나귀를 타고 가면 될 걸 왜 안 타고 가시오.” 그 말이 옳다고 생각되자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갔다. 한참을 가는데 한 노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저런, 아버지는 힘들게 걷고 젊은 아들은 당나귀를 타고 편하게 가다니.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 그 소리에 아들이 내리고 아버지가 당나귀 등에 탔다. 얼마쯤 더 가자 이번에는 우물에서 물을 기르던 여인들이 말했다. “왜 아버지가 당나귀에 타고 아들만 불쌍하게 걷게 만드는 거요.” 이 말도 옳다고 생각해서 두 사람이 함께 당나귀를 타고 갔다. 그런데 그것을 본 한 농부가 나무라듯 말했다. “조그만 당나귀에 두 사람씩이나 타다니 당나귀가 불쌍하지도 않소.” 당나귀를 끌고 갈 수도, 두 사람이 다 탈 수도 없어 고심하던 부자는 결국 당나귀를 장대에 묶어 어깨에 메고 가기로 했다. 마을 입구의 다리 위에 이르렀을 때, 동네 아이들이 이 진귀한 구경거리에 몰려와서는 웃고 떠들었다. 놀란 당나귀가 발버둥을 쳤고 그만 장대가 부러지면서 당나귀는 다리 밑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남의 흉을 보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생각이다. 이처럼 비판은 누군가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자신의 직관과 경험을 토대로 하는 판단이다. 그렇기에 비판은 객관적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그 사람의 감정에 따라 왜곡되기 쉽다.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 없듯이 우리는 모든 비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도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삶이 흔들리고 상처받을 것이 아니라 내 주관으로 나아갈 줄 알아야 한다. 나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떻게 자기 생각을 컨트롤 할 수 있을까? 아쉬움이 너무 크다 보면 후회의 감정이 자신을 괴롭힌다. 노력했음에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포기하는 방법도 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보자. 여우가 높은 가지 위의 포도가 몹시 먹고 싶었지만 못 따먹는 게 아니라 신 포도여서 안 따먹는 것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결국 자기능력으로는 안되니까 변명을 하면서 목표를 쉽게 포기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하나의 교훈으로 불가능한 것은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위선, 겉치레, 체면 등으로 신포도 밑에서 목을 빼고 서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을 살다가보니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남에게 보이는 자기모습에만 신경을 쓰다가 자기는 버리고 남을 닮으려 애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모르는 것이 자신이다. 물론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혹자는 우리 인생을 죽기 전까지 끝없는 남과의 비교과정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붕어빵이 아니다. 남을 내 맘에 들도록 하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차라리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는 것에 의미를 두자. ‘나’라는 존재는 지구상에 오로지 하나뿐이요 내가없으면 세상도 없다. 딱 한번 살고 갈 한번뿐인 내 인생이다.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