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영화] (3)스파게티 웨스턴의 추억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영화] (3)스파게티 웨스턴의 추억
  • 시니어每日
  • 승인 2023.02.0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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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가재 잡던 기억이 참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를 사로잡는다.

맑은 계곡의 돌이 햇빛에 달궈져 물에 일렁거렸다. 계곡 양 옆에 늘어선 녹음(綠陰)까지 물에 내려앉아 달궈진 햇살과 함께 나를 현기증 나게 했다. 그 어지럼증은 돌을 들어 올릴 때 절정에 달했다. 가재는 늘 어둔 돌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돌을 들 때 그 긴장감은 바위에 스며드는 햇빛처럼 쨍했다.

매미소리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들리지 않고 온통 일렁거리는 윤슬과 차가운 물의 느낌, 그리고 가재의 존재에만 집중됐다. 큰 놈은 돌처럼 어둔 몸으로 물빛인지, 자갈 빛인지 모르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마치 오랜 세월동안 나를 기다린 듯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혹시 물의 흔들림이 간파될까 어린 손으로 조심조심하던 그 가재잡기의 흥분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를 자극한다.

필름통이라는 이름을 분신처럼 써오고 있다. 메일 아이디며 영화 공간 이름도 필름통이다. 필름통은 필름이 들어 있는 통이다. 영화의 본판이 들어있는 필름통은 크지만 예고편이 들어 있는 필름통은 지름 18cm에 높이 5cm 정도의 알루미늄 재질의 납작한 원통이다.

온갖 소소한 물건들을 영화 필름통에 넣어 둔다. 그 속에는 동전도 있고 귀이개도 있고, 손톱 깎기, 만년필 잉크, 나사, 지우개, 건전지 등 요긴한 물건들을 넣어 두어 필요할 때 꺼내 쓴다. 삶에 영향을 미칠 물건을 아니지만, 없으면 불편한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필름통이 몇 개 되다 보니 어느 통에 뭐를 들어있는지 열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이 통인가? 아닌가? 이 통에 뭘 넣어두었지? 열 때마다 긴장감이 돈다. 마치 어린 시절 가재 잡던 그 느낌처럼 말이다.

오늘 필름통에서 꺼낸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1930~ )이다.

1970년 사보이극장에서 ‘켈리의 영웅들’(1970)을 본 이후 50년 넘게 스크린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1964) 삼부작에서 찡그린 얼굴로 궐련을 돌려 씹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는 정통이 아닌 짝퉁 서부극이다.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유럽자본으로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이탈리아 영화다. 감독 세르지오 레노네와 음악을 맡은 엔리오 모리꼬네도 이탈리아인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만든 짝퉁을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불렀다. 마카로니는 구멍이 난 뻥튀기처럼 생긴 짧은 국수로 파스타의 일종이다. 요즘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부른다.

‘황야의 무법자’는 요즘 중국산 짝퉁의 모든 요소들을 가진 영화였다. 감독도 무명이었고, 배우 또한 미국에서 공수해 왔지만, 일류가 아니었다. 키 193cm의 훤칠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 TV 서부극 ‘로하이드’로 얼굴이 조금 알려진 정도였다. 깔끔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만의 캐릭터를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무명의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는 요즘은 생각도 못할 불법을 저지른다. 저작권을 무시하고, 용감하게 표절을 감행한다. 바로 일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1961)를 그대로 멕시코 국경의 한 마을로 바꿔버린 것이다. ‘요짐보’는 떠돌이 무사가 두 패로 나뉜 악인들의 무리 속에서 양쪽에 번갈아 고용되며 악인들과 대결하는 영화다. 그 플롯을 그대로 옮겨와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개봉 후 뒤늦게 구로자와 아키라에게 ‘황야의 무법자’의 일본 내 판권을 주고, 각본에 ‘요짐보’의 각본가 키쿠시마 류조와 구로자와 아키라의 이름을 넣어주는 것으로 무마시켰다. 구로자와 아키라 또한 뜻하지 않게 거금의 부수익을 올려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론에 이른다.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황야의 무법자’는 이후 ‘석양의 건맨’(For a Few Dollars More, 1965),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를 히트시키면서 ‘짝퉁’의 오명을 벗고, 당당한 하나의 장르로 승화된다.

이들 영화는 선명한 권선징악, 남성적 감성, 비장미 등으로 미국 서부극과 차별화를 이루며 인기를 끌었다. 음악을 맡은 엔니오 모리꼬네는 휘파람과 나무판 부딪치는 소리, 오카리나와 같은 흔치 않은 악기와 음향을 활용해 황야의 비정함과 황량함 등을 더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는 스파게티 웨스턴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TV서부극으로 인기를 얻었던 주인공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연기 변신을 하지 못하다가 이탈리아 싸구려 영화에 출연하고 돌아와 결국 연기자로서 우뚝 선다. 다분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 인생과 겹친다.

정통 서부극의 히어로 존 웨인이 이들 영화들을 비난했지만, 결국 사라진 것은 존 웨인이었다. 이때 미국 영화는 뉴시네마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매소드 연기를 배운 연기파 배우들이 존 웨인처럼 자신의 성격에 갇혀 있던 성격파 배우들을 몰아낼 때였다. 이후 말론 브란도,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먼, 알 파치노 등 연기파들이 승승장구하고 존 웨인, 율 브리너 등은 은막 뒤로 사라졌다.

싸구려 서부영화로 출발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후 대단한 행보를 보여준다. 배우로서 입지를 강화시키면서 연출을 하는 감독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 또한 서부극이 시작 지점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첫 연출작이 스릴러인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이고, 두 번째 작품이 서부극인 ‘평원의 무법자’(1973)였다. ‘황야의 무법자’가 1977년 7월 30일 한국에서 개봉을 했는데, 그 인기에 힘입어 ‘평원의 무법자’가 수입됐다. 국내 개봉에서는 ‘황야의 스트렌져’라는 제목이 붙었다.

‘황야의 무법자’에서 망토를 걸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연상하고 만경관에서 ‘평원의 무법자’를 두근거리며 봤는데 ‘어라! 이거 뭐지?’

평원의 아지랑이 속에서 말을 탄 건맨이 한 마을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자기를 비웃는 술집 여자를 겁탈하지를 않나, 마을을 지켜준다는 핑계로 마을 사람들의 상품과 물건들을 공짜로 퍼다 쓰고, 술이나 음식도 실컷 먹는다. 심지어 악당들에게 채찍을 맞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무법자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보여준 비장미와 남성미가 완전히 실종돼 버렸다.

그래도 결국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악당들은 모두 제거해 준다. 죽은 보안관 묘비 앞에서 누가 그의 이름을 묻자 “이미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않느냐”며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죽은 보안관의 유령인가?

‘평원의 무법자’는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냉혹한 서부 시대를 그린 리얼 서부극이다. 선량하다고 믿던 마을 주민들 또한 자신들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똘똘 뭉쳐진 악인이었다. 이때 이미 수정주의 웨스턴 ‘용서받지 못한 자’(1992)가 태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중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