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시니어] (144) 나이가 벼슬이던 시대는 지났다
[원더풀 시니어] (144) 나이가 벼슬이던 시대는 지났다
  • 김교환 기자
  • 승인 2021.12.18 15: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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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로 ‘꼰대’라는 말이 있는데 사전에서는 나이 많은 직장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라고 되어있다. 어원을 추측해 본다면 번데기의 우리지방 사투리인 ‘꼰대기’에서 시작된 주름이 많은 늙은이로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들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다고 생각된다. 요사이에 와서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꼰대에 행위를 뜻하는 접속사 ‘질’을 붙여 ‘꼰대질’이라고 하여 자기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변화에 맞춰서 시니어들의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종래에 가졌던 고령사회에 대한 인식과 고령자의 사회 대응 방안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경우에서도 “너 몇 살이니?” 아니면 “나이도 어린것이 ...” 하며 나이가 무슨 벼슬인 것처럼 걸핏하면 나이를 들먹이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특히 듣기 싫은 말에 ‘나잇값을 해라’ ‘그럴 나이는 지났어’ 등이 있는데 나잇값의 기준이 어디에 있으며 그럴 나이 역시 어떤 나이는 되고 어떤 나이는 안 되는지 되묻고 싶다. 나이 든다고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니다.

나이는 흐르는 세월 따라 1년에 1살씩 불어나는 세월의 나이가 표준이지만 사람마다 다른 건강나이 즉 육체적 나이도 있고, 꿈과 열정의 차이로 구분되는 정신적 나이도 있다. 그런데 경로효친, 장유유서와 같은 유교문화의 두꺼운 그늘에서 자란 우리세대에겐 모든 일에 세월 나이 우선이 몸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무조건 점잖아야한다. 여기서 점잖음은 무표정과도 통한다. 자주 많이 웃는 사람은 경박하다느니 동작이 날렵한 사람은 체신이 없다느니 또는 못 배우고 부족한 사람으로 되고 만다. 이제 사회는 변했다. 나이가 자랑일수도 없고 특권일수도 없다.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배워야한다. 변화하는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에 망설여서는 안 된다.

제1야당의 당 대표선거에서 0선의 30대 젊은 후보가 당 대표가 되었다. 야당의 제20대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도 20대의 젊은이들이 축하공연을 했다. 고3 학생이 연설문을 낭독하고 대통령 후보는 다음 사회의 든든한 대한민국 미래라고 칭찬을 한다. 선대위 각 부서마다 청년보좌역을 두고 공동위원장에 청년 사업가를 임명하기도 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청년이나 젊은 세대를 찾기에 분주하다. 선거 때만 되면 영입하는 외부 인사를 이번에는 대부분 젊은 2030세대로 채우고 있다. 이제 젊고 늙고 상관없다. 남은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개방적 사고를 갖고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한다. 나이 때문에 머뭇거릴 이유도 없다. 내게 맞춰지는 상황을 기다려서도 안 된다.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와 어디서든 어울릴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노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야한다. 특히 노인의 고독한 외로움 병을 해결하기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찾아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이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요 만들어 줄 수도 없는 것이다. 스스로 찾고, 만들어야한다. 노인들이 과거에 집착함은 현재 할 일이 없거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일거리를 만들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자. 그래서 자신의 노화과정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태도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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