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세월이 깃든, 칠곡 대흥사 말하는 은행나무
천년의 세월이 깃든, 칠곡 대흥사 말하는 은행나무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11.18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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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해결해 주는 천년 은행나무,
칠곡군의 군목(郡木)으로 노란 잎이 장관 연출
말하는 은행나무. 장희자 기자

고민을 들어주다가 익었다. 소원을 들어주다가 노랗게 익었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힘이 든다고. 은행나무가 진지한 의지를 하늘 끝까지 뻗었다. 

칠곡 대흥사 은행나무는 경북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417번지에 있다. 북쪽에는 비룡산(飛龍山)이, 남쪽으로는 봉화산(烽火山)이 있다. 황계천(黃溪川)이 발원하여 강정천(江亭川)으로 흐른다. 각산(角山) 지명은 내각(內角) 마을과 봉산(鳳山) 마을의 끝 글자를 따서 명명되었다. 칠곡군 기산면과 성주군 초전면을 연결하는 지산로 주변에 자연마을인 각산, 멀미(首山), 찰밭(察田), 서치(西峙), 퉁지미 마을이 있다.

왜관읍을 지나 경북과학대에서 지산로를 따라 3㎞정도 도로변에 각산1리회관이 위치한다.  좌측 각산1길을 따라 각산 마을이다. 이곳은 파리장서의 초안을 작성한 독립운동가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1851~1929)의 녹동서당이 있는 영남의 이름난 반촌(班村)이다.

은행나무, 대흥사, 비룡산 단풍의 가을 놀이. 장희자 기자

우측 각산2길을 이용하여 황계천을 따라 북쪽으로 0.9㎞정도 올라가면 서치 마을이 있다. 서치 마을은 각산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다. 조선후기 영남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는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 1815~1900)의 녹리고택과 녹리서당이 있다. 성주군 월항면의 선석사(세종(世宗)의 왕자들 태실)로 가는 길목에 해당된다. 마을입구에 있는 연못(서치지)에서 1.1㎞정도 북쪽으로 고려 시대 대흥사 터가 있다.

입구에 높이 30m, 둘레 7m, 각산리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칠곡이라는 지명이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1018년(현종9년) 전후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 은행나무는 항상 꿋꿋하고 변함없는 기풍으로 마을을 수호하여 칠곡군의 군목(郡木)으로, 1993년 8월 11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붉은색 단풍과 노랑색 은행나무잎의 조화. 장희자 기자

은행나무에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성주에서 칠곡 퉁지미 마을로 시집온 새색시는 3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였다. 시부모님의 눈치로 답답한 마음이 밀려올 때마다 뒷산 어귀에 있는 큰 은행나무를 찾아가 떨어진 잎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은행나무가 어머니로 나타났다. 새색시 앞에 선 어머니는 애잔한 눈물을 훔치며 따스한 손길로 은행나무 두 잎을 쥐어주었다. 하나는 갈라진, 다른 하나는 갈라지지 않은 은행나무 잎이었다.

어머니는 보름달이 뜨는 날 은행나무로 가서 떨어지는 잎을 잡으라 말하시곤 다시 은행나무로 변해버렸다. 새색시는 꿈속에서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은행나무 아래에서 떨어지는 잎을 잡았고, 잎이 갈라져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새색시는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은행나무로부터 위로와 답을 듣고 싶다. 장희자 기자

이 이야기는 아이를 낳지 못한 며느리들에게 하나둘 전해지기 시작했다. 마을의 며느리들은 은행나무 아래에서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으며 잎을 잡기 시작했다. 갈라진 잎을 잡은 며느리들은 아들을, 갈라지지 않은 잎을 잡은 며느리들은 딸을 낳았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이런저런 남모를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은행나무는 신기하게도 꿈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으로 나타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따뜻하게 조언해주는 걸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자 차츰 나만의 고민을 알아봐주고 어떤 방법으로든 답을 말해준다 하여 말하는 은행나무 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은행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대흥사의 정문 자리이다. 대흥사는 김해김씨와 철성이씨가 선조 묘를 쓰고 재사(齋舍)를 세웠으나 후손이 없었다. 임진왜란 이후 승도들이 결사하여 재사 터에 큰 절을 지었다고 교남지(嶠南誌)에 기록되어 있다.

대흥사 옆 영모재(永慕齋)에서 바라본 은행나무. 장희자 기자

지금의 대흥사 사찰은 근래에 창건한 것이다. 승려들이 수양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변에는 고려~조선 시대 기와 조각들이 다량 분포하고 있다. 기존에 남아있던 주춧돌 크기로 볼 때 과거 대찰(大刹)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뒤편에는 바위가 병풍같이 둘러 서 있다. 그 중 높이가 10m 되는 타원형의 둥그런 신선암 바위가 있다. 옛날 승려들이 이 바위 위에서 독경을 하였다. 남쪽 50m 떨어진 곳에는 부도 8기가 모여 있다. 당시 절에서 쓰는 놋그릇을 만들었던 동점 자리에는 민가 세 집이 들어서 있다.

걱정거리를 해결하고 싶어 은행나무에 손을 짚고 있는 모습. 장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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