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숨은 명소, 구미 무을 수다사
은행나무 숨은 명소, 구미 무을 수다사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11.12 17:1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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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자태의 은행나무, 단풍나무가 만추 풍경 절정을 이룸
임진왜란때 1만명의 의승이 의국법회 개최, 무을농악 발상지
대웅전 영산회상도 2010년 보물 제1638호로 승격
수다사 은행나무와 커플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장희자 기자

 녹색의 변신을 수놓으며 처절하게 추락하는 은행나무가 있다. 수다사(水多寺))는 경북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14번지 일대에 있다. 연악산자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사찰이다. 연악산(淵岳山)은 기양산(706.8m)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성왕 때에 진감국사가 연악산 상봉인 미봉(彌峯)에 백련(白蓮)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창건하여 연화사(淵華寺)라 하였다. 967년(광종 18)에는 화재로 인해 극락전과 청천료(淸泉寮)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185년(명종 15)에 각원(覺圓)이 금강문 등 3문(門)을 세웠다. 극락전과 청천료를 옮겨지었다. 비로전·나한전·시왕전·미륵전·봉황루와 방사(房舍) 24개, 수선사 등을 신축하였다. 사찰 명칭을 연화사에서 성암사(聖巖寺)로 바꾸었다. 

반야교입구에서 바라본 가람의 모습, 장희자 기자

1273년(원종 14) 대수해로 극락전·시왕전·청천료만 남고 모두 유실되었다. 1572년(선조 5)에 사명당(泗溟堂)이 극락전을 중수한 뒤 대웅전이라 개칭하였다. 청천료를 수리하여 극락당이라 하였다. 만세루 24칸과 안심료, 9개의 대방(大房)을 신축하고 절 이름을 수다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서 1만여 명의 의승(義僧)이 모여 의국법회(義國法會)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1704년(숙종 30)의 화재로 현존하는 건물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각원이 조성한 아미타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뒤편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는 1731년에 도익(道益) 등 4명의 화승이 제작한 석가모니후불도이다. 200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6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 보물 제1638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대웅전 좌우로 적묵당과 명부전이 보인다. 장희자 기자

8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 제자 등이 본존인 석가모니를 둘러싸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작게 묘사되어 본존으로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 녹색과 적색의 차분한 색조, 천의와 법의의 화려한 문양, 균형 잡힌 신체표현, 세밀한 필치 등 18세기 전반기 불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또 명부전 안에는 각원이 조성한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하여 시왕상(十王像)이 봉안되어 있다. 1979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봉안되어 있는 지옥도는 희귀한 벽화로서 귀중한 작품이다. 18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다. 1982년과 1992년에도 수리가 진행되었다. 

삼성각앞 극락교와 은행나무 , 장희자 기자

수다사 경내에는 무을풍물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무을농악은 300여 년 전 조선 영조때 수다사의 승려 정재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이군선(1868년생) 상쇠가 가락과 놀이를 모아 집대성하였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무을농악의 기본으로 전해졌다.

2021년 10월 31일 무을 농악의 식전 공연을 시작으로 코로나 극복을 위한 시와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주지 법매 스님은 올해 3월 세 번째 시집 돌 속의 강물을 펴낸 시인이다. 김천시문화상(교육, 문화, 체육 부문)과 경북작가상, 한반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연화교입구에서 바라본 만추의 단풍나무 모습, 장희자 기자

수다사는 입구에서 부터 수려한 자태의 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주문 주변은 노송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반야교를 건너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무성하게 가지를 뻗은 배롱나무 한그루가 있다. 수령 300년, 키 8m, 둘레 1.4m로 2010년 보호수로 지정받았다.

수다사 초입에 있는 쌍정자 옆에 연리지나무가 서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 두그루가 사랑하듯 한몸이 되어 양쪽에 서 있어 쌍정자라 불리었다. 사랑의 나무인 연리지 아래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젊은 커플이 즐겨찾는 장소이다. 그 자리에서 탐욕을 버리는 의연한 은행나무가 있었다

단풍나무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 장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