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거수 이야기] 도동서원의 수문장, 은행나무
[노거수 이야기] 도동서원의 수문장, 은행나무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1.09.01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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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수, 압각수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은 서당, 향교, 서원, 성균관 등이 있다.

서당은 초등학교, 향교와 서원은 중등학교, 성균관은 대학교라고 할 수 있다. 향교는 공립교육기관이고 서원은 사립교육기관이다. 오늘날의 학교와 다른 점은 오늘날에는 교육기능만 있지만 그 당시에는 교육기능에 제향기능까지 하고 있다.

향교나 서원에서 볼 수 있는 나무는 은행나무다. 이는 공자가 은행나무 단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해서 행단(杏亶)이라고 하는데 원래 행(杏)은 중국에서 살구나무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나무로 받아들여졌고 학자수라고 한다. 잎을 보면 오리 발바닥과 비슷하다고 해서 압각수(鴨脚樹)라고도 불린다.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우남희 기자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우남희 기자

도동서원은 유가읍 쌍계리에 쌍계서원으로 있다가 정유재란 때 병화(兵火)를 입어 이곳으로 옮겨 다시 지었다. 이곳에 서원을 짓고는 마을의 이름을 따 보로동 서원이라고 하다가 선조 임금이 공자의 도가 동으로 왔다고 도동이란 이름을 하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며 지난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젠 바쿠에서 도동서원을 비롯한 9개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한강 선생은 한훤당 선생의 외증손으로 서원을 짓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도동으로 사액 받은 기념으로 은행나무를 심으신 분이다.

서원의 수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 450여 년 된 은행나무가 장관이다. 은행은 열리지 않는다. 신도비각 입구와 유물전시관 앞에도 은행나무가 있는데 열리는 것은 유물전시관 앞에 있는 나무다.

해거리를 하지만 열릴 때는 마대 자루를 가져와서 주워가도 될 만큼 많이 열린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다   우남희 기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다 우남희 기자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여러 개의 돌기둥을 받쳐 놓았다. 일반적인 은행나무가 위로 곧게 뻗었다면 이 나무는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은 것이 마치 어머니의 넉넉한 품 같다고나 할까. 그 뿐만이 아니다. 남쪽으로 뻗은 가지는 땅에 닿기까지 했다. 땅에 닿은 그 부분에 뿌리가 내렸는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들 궁금해하지만 알 길이 없다. 다만 닿은 쪽 가지의 잎이 더 짙고 싱싱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450여 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은행나무 또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특히 1959년에 일어난 사라호 태풍 때 한 쪽 가지가 잘리는 아픔을 겪은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나무 둘레에는 목책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한때는 땅에 닿은 가지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고 해서 올라가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둘렀지만, 지금은 철거되었다. 그런데도 목책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없으니 시민의식이 많이 향상되었음이다.

잎이 떨어져 노란 방석을 깔아놓은 듯한 은행나무    우남희 기자
잎이 떨어져 노란 방석을 깔아놓은 듯한 은행나무 우남희 기자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다. 나무의 둘레는 8m가 넘는다.

은행나무의 절정은 노랗게 단풍이 드는 가을이다.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는 도심과 달리 11월 초가 되어야 노랗게 물이 든다. 전국에서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