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의 상처 - 헛소문
코로나 19의 상처 - 헛소문
  • 이상유 기자
  • 승인 2020.05.08 07: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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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시내에 걸린 현수막. 사진 이상유 기자
청도 시내에 걸린 현수막. 사진 이상유 기자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이 우리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숱한 상처를 남긴 채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풍기지 않는 녀석은 헛소문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코로나 19도 한풀 꺾인 4월 어느 날, 볼 일이 생겨 청도에 가게 되었다.

차를 몰고 시가지를 지나다가 이상한 현수막 하나를 발견하고 잠시 멈추었다.

현수막에는 ‘청도 감 전문 농약사는 코로나도 신천지도 아닙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현수막이 내걸렸을까? 궁금증이 생겨 농약사를 찾았다.

각종 농약들로 들어 찬 사무실에는 침울한 표정의 사장이 앉아 있었다.

 

- 우선 본인의 소개부터 좀 해주시지요?

▶ 저는 조상대대로 청도에서 살아온 청도 토박이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30년이 넘도록 농약사를 운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 때는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어 청도에서 알 만한 사람은 저를 다 알고 있습니다.

- 시내에 현수막이 걸려 있던데, 그 간의 사정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 “소문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난 2월 26일입니다.

당시 청도는 이만희 신천지 교주 관련 뉴스와 대남병원 사태 등으로 각종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 한창 시끄러웠습니다.

그날 우리 농약사에 박 모 라는 고객 한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농사와 관련된 상담을 약 5분 정도 하고 헤어졌습니다. 물론 서로가 마스크를 끼고 일정 거리를 유지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청도 보건소에서 전화가 와서 ‘박 모 씨가 다녀간 적이 있느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까 그가 코로나 확진자로 판명이 났다고 하는 겁니다. 그의 동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농약사 외에 다른 곳에 간적은 전혀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혹 코로나 의심증세가 있으면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급하게 박 모 씨의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를 했지요. 그는 아직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농약사에 다녀간 그날 저녁부터 몸에 열이 나고 코로나 증세가 있어 이튿날 보건소에 찾아가 검진을 받아보니 코로나 확진자로 판명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이 정말로 우리 농약사 외에 다른 곳은 간적이 없느냐?’고 다그쳐 물으니, 마트도 가고 어디도 갔다고 실토를 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 농약사만 갔다고 했느냐?’고 물었지요. 말문이 막혀 대답을 못하더군요.

그가 병원으로 이송되어 격리치료에 들어간 후 저가 확인한 바로는 그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반장이라고 하는데,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기 며칠 전에 동네 할머니들과 자신의 집에서 감자씨 쪼개는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날 같이 있었던 할머니 세 분 중 두 분이 코로나 19로 판정이 났고 그와 생활을 같이 했던 자신의 모친도 확진이 되어 모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 그렇다면 그가 코로나 19에 감염된 사람 같은데 어째서 사장님이 감염자라는 헛소문이 나게 된 거지요?

▶ 그래서 소문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저가 언론을 통해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코로나 19는 감염자와 접촉을 했다 하더라도 최소 2-3일 정도가 지나야 증세가 나타나고 잠복기간은 2주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가 저를 만난 그날 저녁에 증세가 나타났고 이튿날 확진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저가 전파자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지요. 만약 저가 전파자라면 빨라도 2-3일 후에 그에게 증세가 나타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건강하고 코로나 징후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소문의 발단은 그가 우리 농약사에 다녀온 후에 코로나 19 증세가 나타났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퍼뜨린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소문을 확산 시킨 것이지요. 요즈음은 휴대전화 등이 있어 순식간에 정보가 퍼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는 코로나 19 환자로 병원으로 이송되고 멀쩡한 저가 코로나 19 전파자라는 소문이 청도 지역에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친척이나 친구 지인들로부터 ‘어떻게 해서 코로나에 걸렸느냐?’고 전화가 오고 난리가 났지요. 늘 가던 목욕탕이나 인근 식당에서도 아예 출입을 못하게 하고 온갖 수모를 겪었습니다. 농약사 영업은 말할 것도 없고요.

내가 아무리 코로나19 감염자가 아니라고 항변을 해도 믿어주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코로나 검사소에 가서 사실이 이러이러 하니 검사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해도 건강한 사람에게 검사를 해 줄 리가 없지요.

굳이 검사를 받으려면 자비로 경산의 중앙병원으로 가서 받아보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농약사 입구에 걸린 현수막. 사진 이상유 기자
농약사 입구에 걸린 현수막. 사진 이상유 기자

- 그러면 신천지와 관련된 소문은 또 무엇이지요?

▶ 저가 소문과는 달리 코로나19 환자로 잡혀가지도 않고 시내를 잘 다니고 있자 이번에는 집사람이 코로나에 걸렸고, 신천지 교인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겁니다.

집사람은 평소에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마침 그때 일이 있어 대구에 있는 딸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보이지 않자 코로나로 잡혀가 격리 되었다는 헛소문이 난 것이지요. 집사람은 평소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 헛소문으로 인한 저와 가족들의 심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농약사 영업피해도 너무 커서 고민 끝에 현수막이라도 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더군요.

우선 200여명의 우리 농약사 고객들에게 저와 집사람이 코로나 및 신천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문자로 알렸습니다.

그리고 시내에 현수막을 내 걸었습니다.

주변 사람들 중에는 ‘헛소문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인데 굳이 현수막까지 내 걸 것이 있느냐?,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헛소문에 울분이 치밀어 현수막을 걸게 되었습니다.

- 오랜 시간 힘든 이야기를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농약사도 번창하기를 빌겠습니다.

 

이제 코로나 19와 헛소문의 광풍은 저만큼 사라지고 있다.

죽어있던 도시는 다시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 아이들도 가방을 챙기고, 오월의 신록은 푸르게 펼쳐지고 있다.

이제 오랫동안 끼어왔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큰 호흡으로 내일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 의식을 저해하는 헛소문과 가짜뉴스에 대한 가슴속의 마스크는 벗지 말아야겠다.

마스크. 이상유 기자
마스크. 이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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