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60주년] 우리 현대사에서의 의미
[4.19 60주년] 우리 현대사에서의 의미
  • 김영조 기자
  • 승인 2020.04.17 09: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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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4·19혁명은 산업화와 함께 대한민국 발전 원동력의 하나인 민주화의 초석이 되고, 우리 사회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정신은 헌법적 가치와 이념으로 승화하여 우리의 생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0년 4·19혁명 60주년을 맞아 시니어매일은 테마기획을 통해 역사와 의의, 유공자 등의 경험담을 들어본다. 아울러 4·19혁명의 밑거름이 된 2·28대구학생운동도 재조명해 본다. 편집자

 

부정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물결이  서울 종로2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4.19혁명 제40주년 기념사진전 도록
부정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물결이 서울 종로2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4.19혁명 제40주년 기념사진전 도록

 

4·19혁명은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 정권의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운동이다.

1948년에 들어선 이승만 정권은 1960년까지 12년간 집권하면서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양민학살 등 온갖 부정과 불법을 자행하며 장기 집권을 획책하였다.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에서 집권당인 자유당은 정치 깡패를 동원한 강압선거, 관권선거, 개표 조작 등의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이런 정치 상황을 전후해 대구에서는 2·28학생 의거가 일어났고, 경남 마산에서도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4월 11일에는 시위 도중 실종되었던 마산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체로 바다에서 발견되자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게 되었다.

4월 19일 서울 시내 각 대학 학생들이 독재규탄과 민주수호 및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총궐기 선언문을 낭독하고 중앙청을 향해 행진하였으며, 이에 당황한 정부는 서울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며 이에 맞섰다.

4월 2 5일에는 전국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구속학생의 즉시 석방을 요구하면서 시위에 나섰고, 이에 자극받은 일반 시민들이 계속해서 시위를 벌인 결과 결국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4·19는 여러 가지 의의를 가진다.

첫째, 4·19는 반(反)정부, 반독재, 반부정(不正) 운동이며, ‘혁명’에 속한다. 이승만 정권이라는 절대 권력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 싸워 결국 독재 정부를 무너뜨리고 제2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권력 교체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나 일제 치하의 독립 운동가들이 벌인 활동처럼 권력 교체 없이 단순히 정의를 위하여 의로운 일을 도모하는 ‘의거’와 다르다.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도 4·19는 ‘4·19혁명기념일’로 정해져 있다.

둘째, 4·19는 학생과 시민 즉 민중에 의한, 아래으로부터의 혁명이다. 이 점에서 5·16군사정변과 같이 소수 세력인 군인들이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찬탈하는, 지배세력간의 권력 교체인 ‘쿠데타’와 구별된다.

셋째, 4·19는 비폭력 시민혁명이다. 흔히 세계 3대 시민혁명으로 영국의 명예혁명(1688∼1689년), 미국의 독립혁명(1776∼1783년), 프랑스 대혁명(1789∼1799년)을 꼽는다. 이 중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은 폭력과 전쟁으로 점철되었으나 4·19혁명은 폭력과 전쟁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영국의 명예혁명에 버금간다.

넷째, 4·19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한 혁명이자 미완의 혁명이다. 4·19에 의해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부족, 자유에 대한 절제 결여, 정치권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국민 혼란과 갈등 야기 등으로 민주주의는 꽃을 피우지 못한 채 5·16군사정변에 의한 군사독재 출현에 빌미를 주었다는 점에서 미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4·19민주이념은 현재 진행형이고 미래 지향적인 가치 기준이다. 4·19는 우리 국민들에게 인간의 존엄성, 주권재민, 자유와 평등, 절차적 정의 등 민주주의의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고, 그 이념은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으로 계승되었다. 앞으로도 4·19민주이념은 국가의 사명과 목표, 권력행사의 정당성, 국민의 삶의 질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본적 가치 기준으로서 계승·발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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