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의 꿈을 안고, 시 전문지 '죽순'
왕대의 꿈을 안고, 시 전문지 '죽순'
  • 우순자(파란꿈) 기자
  • 승인 2019.10.3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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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시전문지 죽순을 찾아서

태고의 신화앞에 수녀가 무릎꾸는 밤

백두산 천지서 춤추든별들은

이미

천사가 피여논 고은 이불속에 숨었다

 

부헝이 산기슭에 우름마자 끝나고

기척없이 성근 대숲에 끼인

 

무거운 안개의 문을

태양이 밀고 열었다

 

간얄픈 노을에 잠긴 -을 걷고

재롱스런 죽순들은 어여삐

병아리 가슴처럼

파아란 꿈을안고

끝없는 창공을 향하야

대기를 호흡한다

-죽순1(1946.5)에 수록

 

죽순문학회의 전신인 죽순시인구락부를 창립한 이윤수 시인의 죽순 창간사다.

죽순시인구락부는 1945년 10월 창립되었고 그 다음해인 5월에 죽순 <제1집>이 출간되었다. 8월과 12월에 각각 2집과 3집이 출간되지만 3집과 4집 사이에 출판사대표의 인쇄대금 지불 불신으로 <임시증간호>가 출판되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재정적 어려움으로 결국, 출판이 중단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79년 죽순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복간호>를 발행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죽순시인구락부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인 이상화 시인의 나의 침실로를 달성공원에 건립했으며, <상화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죽순시인구락부를 창립한 이윤수 선생. 사진제공 이충길 씨

지난 18, 죽순 53호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죽순문학회의 김창제 회장은 축사에서 내년부터는 죽순시인상의 명칭을 이윤수문학상으로 개칭하여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죽순>을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게 한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한다고 했다.

죽순 53호 출판기념회. 우순자 기자

이윤수 선생은 명금당을 운영하며 원고청탁에서부터 편집, 교정, 인쇄, 배달까지 생업을 제쳐두고 죽순을 발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윤수 선생의 <별이 된 단풍잎> 출판기념회 및 죽순 창간 45주년 기념회. 사진제공 이충길 씨

죽순 출판기념회에서 만난 선생의 둘째 아들인 이충길(72) 씨는 명금당 시절 전축이 있어 문인들이 즐겨듣곤 했는데 용돈하려고 레코드판을 몇 번 팔아먹다 혼난 기억이 나며 또, 최해룡선생이 명금당 건너 2층집인 고모댁에서 청마선생한테 시 <바위> 낭송을 부탁했답니다며 그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윤수 선생의 둘째 아들인 이충길 씨. 대구문학관에서 우순자 기자

대구는 문향의 고장이다. 이상화, 이장희, 현진건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후,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 문화예술의 꽃을 피웠다. 지금도 북성로, 향촌동 일대에 가면 그 당시에 문인들이 활동했던 모나미다방, 백조다방, 꽃자리다방 등을 비롯해 죽순의 산실이었던 명금당 터를 볼 수 있다.

윤일현 대구 시인협회장이 문학의 본질에 충실하는 시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축하인사처럼 시문학의 봉화가 되어 문학예술로 이 땅에 이바지하고자 창간한 죽순의 취지를 살려 문향을 널리 떨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