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97주년을 맞은 모교 경북여고를 찾아서(上)
개교 97주년을 맞은 모교 경북여고를 찾아서(上)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3.10.25 1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제 때부터 3만8천명 배출, 한국 여성 교육의 산실 우뚝
동창회관 리모델링 ‘역사관’ 옛 교복·교지 등 추억 한가득
전국 세 번째 공립여학교...3년 뒤 100주년 맞아
후배와 함께한 김정숙 동창회장. 강지윤 기자
후배와 함께한 김정숙 동창회장. 강지윤 기자

2023년 4월 15일 경북여고는 개교 97주년을 맞았다. 일제 강점기인 1926년, 남북한을 통틀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개교한 공립여학교로 3년 후면 100주년을 맞는다. 1학년 100명, 2학년 38명이 동시 입학한 가운데 장관동 가교사에서 개교했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학제개편으로 경북 여자고등학교로 불리게 되었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 그동안 근세에서 디지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대한민국에 3만 8천611명의 인재를 배출하며 경북여고는 지역을 넘어 손꼽히는 한국의 여성 교육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개교 이래 역사의 순간들을 함께했던 유서 깊은 본관 건물은 가림막을 치고 공사 중이고 백합들 쉼터였던 검푸르고 무성했던 히말라야시다 그늘은 자취가 없다.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운동장에서 행해지던 전교생 조회. 조회 시간이면 교장 선생님의 훈시부터 두발 검사, 복장 검사가 이어졌다. 120도 검정 플레어스커트에 빳빳이 풀 먹인 하얀 카라를 덧붙인 상의. 스커트 양옆으로는 가느다란 뜨개실로 짜서 붙인 하얀 줄 하나. 사람들은 이걸 보고 흔히들 ‘흰칼’이라고 불렀다.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이 교복을 입고는 학생 입장 불가의 영화관에도 갈 수 없고 하다못해 시내 제과점에서 수다를 떨어도 금방 눈에 띄었다. 우리들의 자부심이자 굴레였던 이 ‘하얀 선’ 하나는 평생을 따라다니며 동문들을 하나 되게 하는 정체성이 되었다.

젊은 가슴 품은 뜻을 귀히 가꾸어 이슬 아침 햇살 아래 백합화가 피었네

참되고 착하고도 아름다워라 높은 향기 지니는 여인이 되자

백합화 백합화 그 맑은 정신 그 전통에 빛난다 우리학교 경북여고

조지훈이 노랫말을 짓고 박태준이 곡을 붙인 이 교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이면 언제 어디서든, 빗방울이 그릇에 담기듯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마술이 일어난다.

체육시간이면 불볕 속에서도 핸드볼이나 배구공의 향방에 따라 우리들이 내지르던 고함과 탄성이 가득했던 운동장. 담벼락 끝에 서서 바람 불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반짝이던 무성하던 백양나무도 사라진 자리. 그 너머로는 키 높은 아파트들이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서 있다. 체육수업이 끝난 뒤 대여섯 명이 앉아서 땀을 식혀도 넉넉하던 느티나무 아래의 자라바위. 그마저도 50여 년의 세월에 움츠러들어 땅으로 쑤욱 내려앉았고 드넓었던 운동장엔 레고로 만든 집처럼 알록달록한 모듈형의 교사가 자리 잡았다. 새로 짓는 본관건물이 완공되기까지 임시교사로 쓰이는 곳이다.

새 학기 시작 무렵 꽃샘바람이 교복 밑으로 파고들 때, 오들오들 떨면서도 연못가에 내리쬐는 도타운 햇살의 꾐에 빠져 친구의 팔짱끼고 교실 밖으로 나오면 노랗게 깨어나던 개나리. 부풀어 오른 솜털 속에 소담한 꽃송이 감추고 있던 목련의 고고한 자태. 유리창에 반사되던 영롱한 봄 햇살. 그 봄 햇살 같았던 청춘의 푸르렀던 꿈이야말로 긴긴 시간 동안 자신을 잃지 않고 저마다 지켜내게 한 힘이었을까. 교정을 밟고 지나간 수많은 발자국이 나아가 어머니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힘들었던 시대, 나라의 주춧돌이 되었으며 반듯한 시민으로 자식들을 길러내었다. 그렇게 써 내려간 백 년 역사의 현장이 여기 이렇게 서서 이제 헌 집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고 있다.

교문을 들어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면 2·28 기념비가 보이고 맞은편에 역사관 건물이 보인다.

역사관에 정리되어 있는 학교 연혁. 강지윤 기자
역사관에 정리되어 있는 학교 연혁. 강지윤 기자

오래된 목조 강당을 1968년 원형 그대로 서편으로 이동하여 사용하다가, 1990년 모교의 오랜 숙원사업인 강당 건립을 위해 동문은 모금활동을 벌였고 1991년 5월14일 준공식을 했다. 개교 40, 50주년을 거치며 동문 주소록이 발간되고 60주년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동문과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강당 신축 때 부대 건물로 지어진 건물이 지금의 역사관이다. 1층은 학생 복지관 2층은 동창회관으로 조성되었다.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며 역사가 되어버린 여러 가지 자료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만 갔다. 이를 지켜본 총동창회가 발 벗고 나서 오랜 시간 모아둔 자료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정리했다. 2010년 3월 ‘동창회 역사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 되었고 역사관 건립기금 조성에 들어갔다. 기별 분담금과 개인 동문 찬조에 힘입어 2012년 개교기념일, 동창회관으로 쓰이던 건물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교복의 변천사. 강지윤 기자
교복의 변천사. 강지윤 기자

1층은 개교 당시의 연혁부터 역대 교장과 동창회장, 교복과 교기, 해마다 발간되던 교지, 졸업장과 성적표, 각종 트로피, 수학여행과 체육대회, 축제와 생활관에 입소하여 일주일간 받는 예절교육 현장 모습과, 여러 동문장학회 활약상, 각계각층으로 진출한 동문 활약상, 신문 스크랩, 장학생에 관한 서류와 영수증, 심지어는 6·25 동란으로 잃어버린 1회 졸업생 우등상 메달까지 복제하여 전시되어 있다. 살아 숨 쉬는 지나간 100년 역사의 보고이다. 모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방문은 물론이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료 등 디지털 자료를 찾는 기관, 심지어는 미국에 사는 젊은 앵커가 할머니의 뿌리를 찾아 취재하러 왔다 가는 일도 있었다.

전시실 겸 동창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2층에는 귀한 자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관 개관을 준비할 때 발견된 작품들로 1934년 전조선 남녀학생작품전람회 특상을 받은 ‘자모관음상’ (7회 졸업생 4명이 제작한 작품) ‘내금강’등 수 점의 선배들 작품이다. 도저히 자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리모델링이 끝나면 전시회를 갖기로 예정돼 있다.

2017년 역사관에서는 1926년 개교부터 1980년대까지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7권의 포토북에 담는 작업을 시작하여 ‘사진으로 보는 경북여고 역사’(The history of Kyeongbuk Girl’s Highschool)를 제작하여 지난 세월 우리 선배들의 학교생활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였다.

한 학교의 역사를 통해 명실공히 근대사의 흐름이 짚어진다.

모교의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지나간 역사를 되짚어 정리하며 이제 미래를 준비한다. 가보지 않은 시간, 우리가 선배들의 정신과 발자취를 따라 걸어왔듯 후배들 또한 다른 시간 위에서 앞날을 그려 나갈 것이다. 그들의 내딛는 발걸음 또한 그윽하고 조용하며 단단하고 깊은 백합동산의 발자국에 잇대어 있을 것이다. “과거에 발을 딛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라”는 괴테의 말처럼. 우리는 어디서나 보이지 않는 하얀 선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