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마음근육 만들기] 사람은 누구나 다중인격자다
[건강한 마음근육 만들기] 사람은 누구나 다중인격자다
  • 장기성 기자
  • 승인 2023.08.31 15:28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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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1886년에 출판된 책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풍자하고 비판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단편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1886년에 출판된 책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풍자하고 비판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웹스터 사전은 ‘인격’(人格)을 “개인에게 개성을 부여한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특성의 복합체”라고 정의한다. 사람들은 인격이 어린 시절의 학습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어, 이후 삶의 행동을 이끈다고 믿는다. 인격은 우리가 사람을 판단할 때 쓰는 도구다.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문제 있는 사람인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다중인격 혹은 이중인격은 주로 병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 왔다. 우리 사회에서 “이중인격자 같으니라고!” 하는 말은 욕이나 마찬가지다.

스티븐슨의 단편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1886년에 출판된 책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풍자하고 비판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주인공인 지킬 박사는 인간의 몸에 선과 악, 두 가지의 본능이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여러 실험 끝에 화학약물을 개발하여, 자신의 인격을 두 개로 나누는 데 성공한다. 하나는 바로 지킬 박사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절대 악의 분신인 하이드이다. 둘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낮 시간 '지킬'의 모습은 굉장히 젠틀한 신사와 같은 행동거지를 보이지만, 밤 시간의 '하이드'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 밤에 하이드로 변신하여 쾌락을 탐닉하는 행태는 요즈음 인터넷 악플러들과 매우 흡사하다. 비록 소설이지만 당시에도 이중인격을 악마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중인격자가 본질적으로 늘 나쁜 사람일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이 글을 시작한다.

카타가 쓴 책 《다중인격의 심리학》에는 심리학과 뇌 과학이 밝혀낸 인간 정체성의 비밀을 다중인격의 비밀과 다중인격의 사용법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수많은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혔다.
카타가 쓴 책 《다중인격의 심리학》에는 심리학과 뇌 과학이 밝혀낸 인간 정체성의 비밀을 다중인격의 비밀과 다중인격의 사용법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수많은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혔다.

우선 데스테노와 발데솔로가 쓴 《숨겨진 인격》이란 책 속에 나오는 A라는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었다. 여러 사회직책을 거치면서 사랑, 평화, 친절 그리고 절제를 몸소 실천했다. 그러던 중 그의 인생이 망가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출장 중에 외간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그의 모범적 인격과 이미지는 한순간 추락해 버린다. 만약 인격이 불변(不變)한다면 A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그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었을까? 문제는 단 한 번의 불륜이 평생을 올바르게 산 그의 인격을 일순간에 모두 지워버려도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무슨 권리로 단 한 번의 잘못을 근거로 그에게 ‘몹쓸 인격’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단 말인가. 한 가지 해명조로 덧붙인다면, 그 한 번의 사건이 너무 놀랍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탓과 대중매체가 죽어라 떠든 탓에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가려버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다른 또 하나의 사례를 보자. B란 사람의 이야기다. 알코올중독자인 그는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10대 청소년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물에 뛰어든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목숨을 구했지만, 훌륭한 의인으로 환영받지도, 명예훈장을 받지 못했으며, 토크쇼에 초대받아 자신의 도덕적 선의를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다. 그 지역 공무원에게 등을 톡톡 치는 격려만 받고는 금방 잊혔다. 사람들이 보기에 단 한 번의 선행이 평생 퇴행적 행태를 보인 그를 의인으로 부르기에는 어색했을까?

단 한 번의 불륜만으로 비인격자가 될 수 있으며, 또 단 한 번의 선행만으로는 그 사람의 인격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A와 B의 사례에서 봤다.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이따금 좋은 일을 해도 그 사람을 바라보는 인식은 바뀌지 않게 되며, 지금껏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도 비인격자로 만드는데, 단 한 차례의 실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선약의 이중적 잣대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도 공정하지도 특별히 놀랍지도 않다. 심리학자 로진(P. Rozin)의 연구에서 드러나듯, 우리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하는 성향이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비유일지 모르지만, 요점은 합리적이든 아니든, 육체나 정신의 타락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를 관용하기보다는 부도덕한 인격의 소유자로 매몰차게 매도하는데 사람들은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인격을 죽을 때까지 고정된 것으로 보는 시선의 주된 문제점은 ‘인격을 벗어난’ 행위가 사실 괴상한 행위도 아니고 유명한 몇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행위도 아니라는 데 있다.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는 게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든 어쨌든 간에, 거짓말하고, 속이고, 죄지을 가능성은 마음속 곳곳에 숨어있기 마련이란 게다. 그렇다. 그러면 인격이 안정되고 고정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우리 행동이 늘 예측불능이라는 건 물론 아니다. 마음이 예측불가로 움직인다면 우리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인격은 존재해야 한다. 다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위선과 도덕, 사랑과 욕정, 잔인함과 연민, 정직과 기만, 겸손과 거만, 편협과 관용, 그러니까 한마디로 선과 악이 우리 안에 공존하기 때문에, 특정한 순간이나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양자택일의 선택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환경과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행동하다 보면 누구나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은 상황에 따라 왜 그런 식으로 작동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정신이 우리 삶을 최적화시키려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최적화란 우리가 살아남아 유전자를 물려받을 자손에게 훨씬 진화된 우성의 종자를 배태시키려는 일종의 본능적 사투(死鬪)이다. 이중인격을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진화론의 일환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인격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