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유고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이어령 유고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3.04.12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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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시인으로 등단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두 번째 시집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표지. 도서출판 열림원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표지. 도서출판 열림원

2022년 2월 세상을 떠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1933∼2022)의 유고시집이 나왔다.

교수로서, 사상가로서, 비평가로서 두 세기를 풍미한 시대의 지성이자 큰 스승이었던 그는 2006년 ‘시인세계’에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등 시 두 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6년도 대학 시절 서울대 학보에 투고한 시부터 최근에 쓴 시까지 모두 70편을 묶어서 첫 번째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출간했다.

2012년 위암으로 곁을 떠나간 딸 이민아 목사(1959∼2012)의 10주기를 위해 이어령 선생은 췌장암 투병 생활 중에 시를 쓰고 정리하고 서문을 완성하고 출간 직전에 생을 마감했다.

두 번째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는 전체 4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까마귀의 노래’는 영적 깨달음과 참회, 2부 ‘한 방울의 눈물에서 시작되는 생’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보내는 감사와 응원, 3부 ‘푸른 아기집을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순수와 희망, 4부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는 딸을 잃은 후 고통과 그리움을 조심스레 토해내고 있다. 부록에는 선생이 평소 탐미했던 청자와 백자에 헌정하는 시들을 모았다.

길을 가던 여인이 물어보았지요

얼마나 추우니

신문 배달을 하던 아이는 대답했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얼마나 추우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제는 춥지 않아요

- ‘말 한마디로’ 부분

눈부신 햇살이 이부자리를 개는데

네가 누운 자리에도 아침이 왔다

먹지 못해 머리맡에 둔

사과처럼 까맣게 타들어가도

향기로운 너의 시간

- ‘오늘도 아침이 왔다’ 부분

모든 여우들이 부럽게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시선 때문에

여우는 시고 떫은 포도를 계속 따 먹었지요

아주 맛이 있는 체하고, 저 포도는 달다고

남을, 그리고 자기를 속인 것이에요.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여우는 신 포도를 먹고 또 먹다가

드디어 위궤양에 걸려서 죽었다는 것이 현재의

이솝 우화지요

----- 중략 ------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이로 만들지 말고

내 아이가 진정 좋아하는 삶을 만들어 주세요

그것이 높은 나뭇가지의 포도가 아니라도 좋으니

정말 자기 입에 맞는 포도를 발견하게 하세요.

'신 포도를 먹고 사는 사람들’ 부분

 

  • 책 이름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 지은이 이어령
  • 펴낸이 정중모
  • 펴낸 곳 도서출판 열림원
  • 펴낸 날 2022년 3월 15일
  • 면수 212
  • 값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