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무장이의 공방
[기고] 나무장이의 공방
  • 시니어每日
  • 승인 2023.03.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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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경북 의성군 춘산면 옥정리 폐교된 옛 춘산중학교 자리에 의성군 목재문화체험장이 문을 열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들은 여전히 묵묵하게 교정을 지키고 있고, 교실로 사용되던 건물들은 리모델링되어 새롭게 단장했다. 산림청, 경상북도, 의성군의 도움으로 목재문화체험장 130여 평과 생활가구 전시장 450여 평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가슴 뛰는 순간이었다.

나무, 운명적 만남

나무와의 인연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했지만,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금방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눈썰미며 솜씨가 뛰어났다. 1975년 중학교에 다닐 때, 친구의 부탁으로 나무도장을 파기 시작했다. 돈을 받고 만든 첫 작품이었다. 잘 만든다는 소문이 나면서 선·후배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2천여 개 정도 만들었다. 덕분에 용돈벌이도 하고 나무를 꼼꼼히 관찰하고 연구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전문적인 목공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성실함을 높게 평가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디자인학교 훈련교사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 길을 시작으로 내 삶은 ‘나무’와는 뗄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한눈을 판 적도, 후회해 본 적도 없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무장이’다.

나무 향기를 맡으며 나무를 자르고 다듬다 보면, 세상 모든 걱정도 아픔도 잊을 수 있었다. ‘의성군 목재문화체험장’은 내가 나무에게서 받았던 위안과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시작했다. 딱딱한 플라스틱, 시멘트 문화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나무가 주는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다.

‘의성군 목재문화체험장’, 새로운 도전

부산에서 제법 잘 나가던 사업을 정리하고 여기 의성군에 목재문화체험장을 연다고 했을 때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붉은색 편백나무가 주는 그 편안한 향기와 삼나무를 다듬을 때의 부드러운 그 손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산림청과 경상북도의 지원 아래 김주수 군수님과 의성군의 노력으로 목재문화체험장의 문을 열었다. 군수님의 남다른 관심과 지리적 특성을 잘 살린 미래지향적 실천사업으로, 재정과 행정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단순한 체험과 교육에 머물지 않고 많은 가정이 함께하여 '한 가정 가족 협동 목재작품 갖기 운동'을 전개하고 싶었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와서 나무를 켜고 자르고 또 만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벅찼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기족간의 유대, 정서적 공유와 여유를 가지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면, 성취감도 얻고 가족애도 확인하는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2만5천명이 목재문화체험장을 다녀갔다. 특히 2022년에는 코로나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3천7백명이 체험과 방문 프로그램으로 참여했다. 유치원생부터 직장인, 동호인에 이르기까지 목재문화체험장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중· 고등학교 학생들은 진로 체험으로 찾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수업한다. 학생들이 나무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낄 수 있기를, 나무 향이 주는 넉넉함을 마음에 담아가기를 기도한다.

학생들에게는 시계, 책상, 책꽂이, 휴대폰 거치대 등 생활소품 위주로 진행하며, 레이저 프로그램(포토샵, 포토스케이프, 코렐드로우, 일러스트)을 활용한다. 목재프로그램은 스케치업, 헤드를 활용하여 가공하고 있다. 안전과 능률을 위해 수업자체가 컴퓨터로 진행되며, 기계가 하지 못하는 부분은 직접 손으로 작업한다. 목재문화체험장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이 혼합되어 각 세대를 연결하여 하나로 통합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학교수업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왔던 청소년들이 가구를 만들면서 눈빛이 진지해지고, 닫혀있던 마음이 서서히 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또한 큰 기쁨이자 보람이다.

‘나무장이’라는 이름

나무를 만진 세월이 40년이 훌쩍 넘었다. 일상에 쓰이는 생활가구를 만들기도 하고, 작품성과 개성을 살린 작품, 소품 등 다양하게 나무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무가 뿜어내는 향기로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나무를 다듬으며 나무와 교감한다. 단단한 나무, 부드러운 나무. 각각의 나무가 가진 형태와 질감, 색감에 따라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나무장이는 나무 본연의 결을 잘 아는 사람, 나무 자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빠른 길, 굽은 길, 큰길, 좁은 길 등등. 그 중에 내가 사랑하는 이름은 ‘들길’이다. 마음을 풀어헤치며 걸을 수 있는 길. 그래서 누구나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길. 전통목공가구기법을 이으며, 오늘도 들길을 가는 나무장이이고 싶다.

 

 

김복연 의성군 목재문화체험장 원장

▷주요 이력

목공예 기능사,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목공예) 자격 취득, 2017 한국기능연합회 올해의 기술&예술 올해의 작가상, 2018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물 대상, 제31회 한국신지식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