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삼짇날(음력 3.3) 해야 하나 기후온난화로 일주일 앞당겨
문헌의 내용을 살려 복장과 유희 비슷하게 재현
고운 한복으로 차려입은 여인네들이 삼삼오오 둘러서서 소곤소곤 수다를 떨며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찹쌀 경단을 둥글납작하게 만들어 전을 부친다. 살풋 익기를 기다렸다가 전 위에 진달래 꽃잎과 자주색 제비꽃, 노란 민들레 등 다양한 색상의 꽃잎과 쑥을 얹기도 한다. 전이 굽히며 고소한 냄새에 은은한 꽃향기, 쑥 향기까지 보태지니 참가자들은 입안에 고인 군침을 꿀꺽 삼킨다. 화전놀이 현장이다.
2022. 3. 29(일) 달성군 가창면 소재 한천서원(寒泉書院)에서 화전놀이가 열렸다. 한천서원은 전이갑과 전의갑 장군 형제분을 모신 서원이다. 두 장군은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을 살리려고 대신 그의 갑옷을 입고 분사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과 함께 남아 끝까지 항전했다. (사)한국인성예절교육원(약칭 '한예원'이 주최하고 (사)범국민예의생활실천운동본부(약칭 :예실본)가 후원한 이날 화전놀이는 코로나 와중에도 50여 명의 여성이 참석하여 우리 조상들의 좋은 옛 풍습을 문헌에 나오는 그대로 재현하는 뜻깊은 축제 놀이가 되었다.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화전놀이는 원래 주재료인 진달래가 만발하는 삼월 삼짇날(음력 3.3)에 했다. 올해 삼짇날은 일주일 뒤인 4.3이 된다. 지구온난화 탓에 대구는 벌써 진달래가 만발하여 날짜를 고집하면 진달래가 지고 난 후라 알맹이 없는 행사가 되고 만다. 시절이 바뀌면 발 빠르게 적응해야 살아남는 변화무쌍한 4차 산업 시대가 아닌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화전놀이는 문밖출입이 힘들고 가사노동과 농사로 힘들었던 여인들을 위한 공식적인 나들이 행사였다. 이날만큼은 시부모의 허락을 받은 후 경관 좋은 산천을 찾아 해가 질 때까지 화전을 비롯한 각종 먹거리를 나눠먹는 한편, 가사도 짓고 음주·가무도 하며 고단했던 시집살이의 한을 풀면서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이번 한천서원 화전대회는 놀이의 재미와 고증에 충실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를 초청했다. 한국 가사문학회, 고운 차회, 용학도서관의 가사 낭독 반, 한예원의 체험장 강사(도동서원, 육신사, 한천서원, 옻골 전통체험장) 등 7개 팀이 참가했다. 팀명은 설중매, 개나리, 산수유, 복수초, 백목련, 수선화, 민들레 팀 등 봄꽃 이름을 따서 추첨으로 정했다. 권위 있는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맛, 멋, 위생, 상차림, 복장, 팀 단합 등의 심사기준에 따라 채점했다. 금, 은, 동상과 장려상이 걸려 있어 열띤 경연을 벌였는데 참가한 모든 팀에게 시상은 골고루 상이 돌아갔다.
각 팀은 마침 서원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꺾어와 전 위에 얹어 화전을 굽기도 하고 작은 꽃병에 꽂아 단장하기도 했다. 미리 준비해온 다양한 색소 식품과 예쁜 꽃잎들을 가미했다. 다양한 화전들이 예쁜 접시들에 담겨 저마다 모양과 맛을 자랑했는데 상차림은 각양각색의 차와 화전들이 팀마다의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을 가미하여 새롭게 탄생했다.
이날의 화전놀이는 봄을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의 일을 잘해보자는 각오를 다지며 음주가무 대신 정가(正歌) 공연과 대금 연주, 내방가사 낭독, 시낭송, 하모니카 연주 등의 격조 있는 유흥으로 봄날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어느새 해는 서산에 걸리고 서원 마당의 진달래는 석양에 붉은 빛을 더했다. 참석자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날 화전놀이를 주관한 (사)범국민에의생활실천운동본부 임귀희 이사장은 "신라 시대 부터 유구한 전통을 지닌 여인들의 봄맞이 행사인 화전놀이는 근간에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만 한예원과 예실본에서 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진다. 참석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대회를 개최한 보람을 느끼며 내년 대회를 기약한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