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도쿄올림픽의 꽃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도쿄올림픽의 꽃
  • 최성규 기자
  • 승인 2021.08.13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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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도 선수 '디아즈'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

 

마지막 기회다. 127kg의 역기가 무릎 앞에 놓였다. 여태 들어본 적이 없던 무게다. 성공하면 금메달이고, 실패하면 은메달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가슴까지 끌어 올린 후, 고함과 동시에 팔을 쭉 펴면서 바벨을 들어 올린다. 그의 두 눈에서는 감격과 환희의 눈물이 쏟아진다. 성공을 확인한 후, 역기를 던져버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볼을 감싼다. 곧이어 코치와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한다.

TV 앞에서, 남의 나라 선수의 선전을 보고 울컥해본 적은 처음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장면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타국의 자그마한 여자에 대해 검색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사연이 실린 기사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필리핀 역도 선수 하이딜린 디아즈(30)다.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55kg급 금메달리스트다. 필리핀이 올림픽에 참가한 이후 97년 만에 딴 최초의 금메달이다. 필리핀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자그마한 여자의 팔뚝으로 인구 1억이 넘는 필리핀을 들어 올렸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우리는 필리핀인이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디아즈의 역도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필리핀 삼보앙가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 탓에, 어린 몸으로 물 40를 지고 수백 미터를 걸어 다녔다. 이런 환경은, 후에 역도 선수로 성장한 동기가 된다. 훈련 경비도 늘 부족해서, 대기업과 스포츠 후원가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금전적인 지원 요청을 해야 했다. 지난해 2월에는 코치의 조언을 받아 말레이시아로 전지훈련을 하러 갔으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체육관 출입을 통제당했다.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숙소에서 물통으로 훈련을 했다.

그의 집념과 의지는 올림픽 출전 기록에도 나타난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필리핀 역도 선수 최초로 참가했다. 이후 자신의 세 번째 올림픽이었던, 2016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필리핀 역도 사상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러나, 반체제 운동에 참여했다는 오해로 블랙리스트에 올려져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필리핀에서는 그의 삶이 단막극으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이제 뜨거웠던 올림픽 열기도 식어간다. 잠시나마 흥분되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들의 이면에 묻힌 그들의 땀과 노력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니,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해도 괜찮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세상이다. 사회 곳곳이 신음 중이다.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잘 견뎌내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야겠다. 쓴맛이 있어야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역경을 이겨내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척박한 땅에서 피는 꽃이 더욱더 예쁜 법이다.

다아즈가 한 말을 다시 새겨 본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신이 준 모든 역경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