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의 '지상의 방 한 칸'
김사인의 '지상의 방 한 칸'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12.05 13:16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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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의 ‘지상의 방 한 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시집 ‘밤에 쓰는 편지’ 문학동네. 2005. 1. 27. 

 

월세 만 원짜리 방 한 칸에서 신접살이를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세계가 유토피아 같았다. 우리만의 보금자리,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언 몸을 녹일 수 있다는 것만도 은혜로운 일이었다. 푸른 꿈과 창창한 미래가 재산이었다. 물욕을 모르던 순수의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 값이 작년 9·13 대책 이후 1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는 뉴스다. 인디언 체로키 족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이라 한다더니 그야말로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라는 천형은 쳇바퀴처럼 돈다. 우리는 대책이 무대책이 되는 넌센스 같은 시대를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마저 사치다. 왜 나만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사나, 자괴감으로 일상을 건너는 현대인들의 현주소 같은 시를 읽는다.

원고지 한 칸 메워서 방 한 칸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원고지가 필요할까? 대비되는 공간적인 넓이에서 힘든 처지를 가늠하고도 남는다. 슬픔과 한 궤를 이루는 빈곤의 그늘이 부각되어 행간 깊숙이 드리워져있다. 인생이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한다 해야 하나. 가난과 불행, 불가분의 관계가 답답하기만 하다. 진솔한 스토리를 구성한 詩일수록 감동의 파동이 커지기 마련이다. 등 따습고 배부른 이야기는 내가 등을 돌린다고 해서 아쉬울 일이 없을 게다. 이렇게 지난한 가장의 고뇌, 일기 형식으로 풀어놓은 서정이 첫 추위를 더 못 견디게 한다. ‘둘째놈 애린 손끝’,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은 자신의 무능을 에둘러 보여준다.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에서 찬바람이 늑골을 곱이곱이 파고든다. 궁핍으로 짓눌린 불면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