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판례 '육체노동 가동연한 65세' → '정년 65세' 견인할까?
새 판례 '육체노동 가동연한 65세' → '정년 65세' 견인할까?
  • 류영길 기자
  • 승인 2019.02.2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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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노동 가동연한 60→65세로 판시 - 30년 판례 깨다
덩달아 정년도 늘어나는 건 아니다 - 별도 법제화 있어야
노동가능인구 감소로 정년 연장 필요하지만 시기 불투명

대법원은 21일,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판결했다. 30년의 판례를 갈아치우는 새로운 소식에 직장인들은 정년이 곧 65세로 연장되지 않을까 라는기대감으로 들떴다. 보험업계에선 보험료 인상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길래?

대법원이 노동가능연한을 65세로 상향하는 판결을 내놓자 정년도 65세로 늘어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표출되고 있다. / 대법원홈페이지 캡쳐
대법원이 노동가능연한을 65세로 상향하는 판결을 내놓자 정년도 65세로 늘어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표출되고 있다. / 대법원홈페이지 캡쳐

 

◇ 사건 개요

2015년 8월, 4살짜리 어린이가 수영장에서 안전사고로 숨졌다. 부모는 수영장 운영업체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며 손해배상액과 위자료 등 합계 5억원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기 위해 그 어린이가 생존할 경우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를 판단하는 게 주요쟁점이었다. 1.2심은 기존 판례대로 60세까지 육체노동이 가능한 걸로 판정했다. 이에 원고가 불복하자 대법원은 평균수명의 상승, GDP상승, 실질 정년 연령, 기타 법령 적용 연령 등 현실을 반영하여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판단,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 판결의 영향

노동 가동연한이 5년 늘어나 배상액이 증가하면 당연히 보험료 인상도 뒤따르게 된다. 지난해 11월, 손해보험협회 대법원 공개변론에서도 “현행 자동차보험 약관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60세 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상향하면 자동차 보험료를 1.2%가량 인상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서비스 분야에서도 최소 연령 상향 논란이 점쳐지고 있다. 현재 지하철 무임승차, 기초연금 등 총 199종의 노령 복지 서비스가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노동 가동연한이 상향되면 이것도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예상된다. 국민연금 수령 시점도 늦추자는 말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노동 가동연한의 상향조정이 정년의 연장과 연동될까 라는 것이다. 정년의 연장이 현실화된다면 일거리를 찾는 노년들에게는 희소식이겠지만 젊은층은 일부 일자리를 노년층에 잠식 당해 청년실업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늘어난 노동 가동연한이 당장 정년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이번 판결은 일할 수 있는 연령의 한계를 경험칙에 비추어 법원이 재조정해 준 것이지 아직 정년 관련 법령이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기업이 정년을 연장할 의무는 없다.

◇ 앞으로 어떻게 되나

노동 가동연한이 65세로 적용되면 정년 관련 법령 개정도 뒤따를까? 

쉬운 일이 아니다. 30여년 전인 1989년, 55세에서 60세로 노동 가동연한 상향 판결이 났지만 실제 60세 정년이 법제화된 것은 24년 뒤인 2013년에 와서다. 그래서 이번에도 정년 연장이 법제화되려면 수십년이 걸릴 거라는 게 일반인의 의견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그때는 생산가능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지금은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년 연장 법제화가 앞당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생산 가능 인구는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를 분석해 보니 정년을 65세로 해도 10년 뒤엔 노동인구가 현재보다 더 적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65세 정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은 법정 정년이 65세이고 독일은 67세로 상향 조정되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우리나라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령 인력에 대한 인식이 시대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2년전부터 전 사업장 근로자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었지만 곧바로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어 50대 후반의 고급인력이 저임금 맥빠진 노동력으로 전락해 버렸다. 정년을 4년 남겨두고 임금을 30% 깎인 직장인 이모 씨(56)는 “이웃나라 일본은 벌써부터 노인인력 활용방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50대 중반만 넘어도 뒷방 늙은이 취급하며 스스로 회사를 떠나기를 바라는 것 같아 눈칫밥을 먹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월급을 깎이는 건 좋지만 오랜 세월 갈고 닦은 경력과 능력을 무시 당하는 건 견디기 힘들다”는 말도 덧붙였다.

손해 배상액 산정의 기준이 되는 육체노동 가동연한은 65세로 늘어났지만 정년은 아직 60세 그대로다. 이마저도 가까스로 지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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