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장수를 재앙이라 하는가
누가 장수를 재앙이라 하는가
  • 류영길 기자
  • 승인 2019.03.06 10:2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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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은 46세였다. 왕들은 스트레스에다 운동을 하지 않아 각종 성인병으로 단명하였다는 설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왕이니까 치료는 제대로 받지 않았을까? 왕의 수명이 이 정도니 질병과 굶주림과 전쟁에 시달려야 했던 일반 백성은 오죽하였으랴. 통계수치가 없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백성들의 평균수명은 35세 이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1970년대 초까지도 한국인의 태반은 60세를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만60세가 되면 친척은 물론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큰 잔치를 벌였다. 환갑잔치는 그야말로 장수의 환희를 함께 나누는 마을축제였다. 온갖 삶의 고초 속에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짧디짧은 생을 누리다 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 지금의 시니어 세대 중 조부모의 얼굴을 본 적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눈부신 경제 성장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갈수록 길어져 왔다. 급기야 100세를 넘긴 초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처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100세 장수는 신문에 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100세 이상 인구는 2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전 국민의 평균수명도 80세를 훌쩍 넘어 100세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런데 큰일이라고들 아우성이다. 심지어 재앙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수명의 연장은 선진복지사회의 지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큰일이니 재앙이니 하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가? 이 놀라운 변화를 그렇게도 쉽사리 평가절하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노년층의 비율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명 연장의 당연한 결과다.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이미 전체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25년에는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한다. 노인부양비율이 자꾸만 커지고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게다가 치매 등 각종 질병의 고통이 더해질 것이라 한다. 그래서 재앙이란 말인가?

준비된 노후는 웰빙-웰에이징-웰다잉으로 순조롭게 가고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노년은 막막하기만 하다. 직장에서 밀려나, 번 돈 다 쓰고 나면 스스로를 사회와 격리시킨다. 경조사도 모임도 기피하게 된다. 육체도 정신도 쇠약해져 빠른 속도로 늙어간다. 멀쩡하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폐인에 가까운 무능력자로 변해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병까지 찾아온다. 그래서 가난하고 병들어 오래 살면 이를 재앙이라 하는가 보다.

따지고 보면 초고령사회니 노동인구 감소니 하는 현상은 수명 연장에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저출산에 기인한 면이 더 크다. 그리고 인구 구조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 잘못도 있다. 장수 자체가 재앙이 아니다. 망가진 삶으로의 방치가 재앙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시니어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그렇게 하면 노동가능인구 비율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초고령화란 단어도 멀어지게 될 것이다.

나이 들어 병약해지는 건 자연의 이치다. 물론 젊은 시절 온몸 바쳐 일하다 골병이 들어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어르신도 있다. 불의의 병을 얻어 꺼질 듯 말듯 한 생명을 부여잡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 그렇다고 체념할 일은 아니다. 건강한 어르신이 연약한 어르신을 보살펴 주면 된다. 제발 노년의 끝에 오는 병을 절망적인 것으로 몰아가지 말자.

어르신의 존재는 후손들에게 살아있는 역사다. 얼굴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얘기를 아무리 들려줘 봐야 자식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생존하는 어르신은 그 자체가 한 가정의 표상이요 동력이다. 어르신이 구심점이 되어 4대 5대가 어우러져 지내는 가정은 보물을 소유한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수를 무턱대고 재앙이라고 세뇌하고 있지는 않은가?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삶을 파괴한다. 불평은 불평을 낳고 감사는 감사를 낳듯 재앙이라 생각하면 재앙이 되고 축복이라 생각하면 축복이 된다.

누구도 늙음을 피해 갈 수 없다. 노년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이다. 오늘 어르신이 불행하면 내일 나의 행복도 기약할 수 없다. 늘어난 수명을 인위적으로 줄일 수 있으랴. 우리 어르신들이 ‘주어진’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주류인 노년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 행복을 일구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모두를 위한 길이다.

고난의 여생을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도, 나라 살림을 꾸려나가는 위정자들도, 그리고 부모 시니어들을 모시고 살아가는 자녀 시니어들과 그 후손들도, 부디 장수를 부질없고 무익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장수는 축복이다.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복된 민족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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