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에이지 골든라이프] 이재윤 병원장 '봉사의 철학' ②
[골든에이지 골든라이프] 이재윤 병원장 '봉사의 철학' ②
  • 장기성·강효금·조동래 기자
  • 승인 2019.04.19 12: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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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사회봉사는 "내가 부자되거든, 내가 여유가 있으면 하겠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여유는 죽을 때까지 없는 법이지요"

 

이재윤 원장의 말이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따분한 점도 있습니다.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입 안에서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치아를 들여다보며 치료를 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과학은 진리를 말하는 학문 아닙니까. 매력도 있지요"  덕영치과병원 재공
이재윤 원장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따분한 점도 있습니다.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입 안에서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치아를 들여다보며 치료를 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과학은 진리를 말하는 학문 아닙니까. 매력도 있지요"라고 했다. 덕영치과병원 제공

 

사회봉사를 하려고 결심한 사람은 ‘내가 부자가 되거든 혹은 내가 여유가 있으면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여유란 죽을 때까지 생기지 않은 법’이라고도 했다. 듣기만 해도 폐부를 찌르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면 지구를 100% 구할 수 있지만, 절반만이 함께한다면 지구의 절반만 구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듣기 힘든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제1부에이어 제2부에서는 이재윤 병원장의 ‘베푸는 철학, 봉사의 철학’의 의미를 들어본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잊지 말아야 가치가 있다면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입니다. 말하자면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이지요. 지금 한국 사회는 일자리, 고용과 같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가진 자가 먼저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양반이나 귀족의 의무라고나 할까요. 경주 ‘최부잣집’이 생각납니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 아닙니까. 사회적 엘리트로 간주되는 안중근 같은 분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었겠습니까. 사회 상층부인 엘리트층이 앞장서야 역사는 진보할 수 있고, 나라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두 따님(도이, 사강)을 특별하게 키우신 원장님만의 교육관이 있으신지요. 또 둘째 딸이 영화감독인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그 분야에서 힘든 일이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사강은 영화감독이고, 도이는 영국에서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이라는 디자인 예술대학를 졸업한 후 ‘겐조’라는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다, 최근에는 패션디자인 회사 ‘도이’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저도 사실 페미니스트입니다. 자녀의 교육관에 대해서 물으셨는데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합니다.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뒤에서 지켜보며 큰 테두리의 경계만 지켰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부모라는 이유로 무엇을 강제로 시킨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요즈음 교수법 가운데 뜨고 있는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학습에 대해 책임을 지며, 교사는 무대 위의 현자(Sage on the stage)아닌 안내자(guide)역을 맡아야한다는 것인데요, 그래야 창의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생긴다고 합니다. 가정교육도 이 교수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한번은 사강이가 어릴 때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네가 알아서 해라 했더니, 이틀 집에서 쉬더니 다시 학교에 가더군요. 심심해서 안 되겠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을 겁니다.

자신의 적성과 취향을 최대한 존중했습니다. 이런 자식에 대한 저의 교육관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영진전문대학 교수하계수련회와 충남교육청에 특강을 한 적도 있습니다. 치과의사가 교육 전문가로 나셨으니 우습지 않습니까. 충남교육청에선 장관급에 해당하는 강의료를 받았으니까요.

 

- ‘보리와 이빨’을 비롯한 수많은 수필집과 시집을 내셨는데, 요즈음도 글쓰기를 계속하는지요. 혹시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있는지요. 아니면 구상하고 있는 것이라도.

▶저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봉사의 철학’인데요. 근년에 저서로 출판되기도 했지만 좀 더 철학적 뼈대를 넣고, 봉사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주는지 심도 있게 다루어 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꿈으로 남겨두었던 것이 철학공부입니다. 특히 실존주의 철학인데요, 태어날 때 우리 인간은 부여받은 책무가 없으니 성장하면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 아닙니까. 이처럼 실존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뜻하기도 하지만요,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하기에 늘 고뇌하고 불안에 휩싸이기 일쑤지요. 뭐 아름다운 구속이랄까요. 아무튼 자유에 따른 책임성이 중요하거든요. 이 실존주의의 본질을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를 퇴임 후 한번 몰입해 볼 생각입니다.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에서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새와 알의 두 세계에서, 어미가 알을 깨는 것이 먼저 일어나서는 안 되며, 알 속의 새끼가 스스로가 나올 준비가 무르익었을 때 알 속에서 새끼의 처절한 움직임이 있을 때 한 순간 부리로 알을 깨뜨리는어미의 동작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는 하나를 세계를 파괴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 이지요. 알 속의 새끼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나 자생력이 구비되었을 때(를) 말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무턱대고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있는데, 실존적 의미에서 볼 때 안타깝습니다. 새 직장을 구해놓고, 사표 내는 것이 실존적 삶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 씁쓸하지요. 실존적 사고나 행동은 저 멀리 하늘나라의 무지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에서의 삶이란 걸 늘 생각해야 합니다. 실존주의와 실존적 삶, 참 매력 있지 않습니까.

 

-다시 태어나도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지요?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따분한 점도 있습니다.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입 안에서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치아를 들여다보며 치료를 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과학은 진리를 말하는 학문 아닙니까. 매력도 있지요. 대학시절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그 쪽에만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편협한 존재보다는 폭넓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문학과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인문학으로 살아가기가 참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먹고사는 호구책이 마련된다면 문학이나 철학도 하고 싶네요.

 

 

이 도표가 이재윤 병원장의 '임플란트 이야기'를 대변해 주고 있다.  덕영치과병원 제공
이 도표가 이재윤 병원장의 '임플란트 이야기'를 대변해 주고 있다. 덕영치과병원 제공

 

-마지막으로 시니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나이가 들면 자기 가족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웃과 사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린 사실 많은 혜택을 받고 태어나지 않습니까.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말이지요. 가족만 생각하고 우리 이웃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좀 더 폭 넓게 보자면 온실 가스나 기후변화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 이웃이나 지구가 폐허상태로 바뀌게 되는데 살아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늘 ‘함께’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봐야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면 지구를 100% 구할 수 있지만, 절반만이 함께한다면 절반만 구할 수 있다는 논리지요. 사회봉사를 하려고 결심한 사람은 ‘내가 부자가 되거든’ 혹은 ‘내가 여유가 있으면’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여유란 죽을 때까지 생기지 않은 법이지요. 시니어 모두가 ‘함께’하는 저녁노을, 생각만 해도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약속된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쾌청한 오후였다. 원장과 악수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밖을 나서니, 하늘엔 구름이 솜사탕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마음까지 개운해졌다. 작별의 손에 남겨진 따듯한 온기가 하루 종일 여운을 남기며 향기를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