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고 피어나면서도 욕심이 없어 얼굴이 맑고 올곧은 품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아무리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해서 시인 묵객의 詩·畵 에 빠짐없이 등장하며 사랑을 받아온 귀물이다,
선비들은 그 귀물에다 격을 매겼다.
꽃에 눈이 내려앉으면 설중매(雪中梅)요, 달 밝은 밤에 보면 월매(月梅)요 옥같이 곱다고 해서 옥매(玉梅)라부른다.
꽃을 탐하면 매화나무요, 열매를 탐하면 매실나무요, 향기(香氣)를 탐하면 매향(梅香)이 된다
호사가는 '이른 봄에 처음 피어나는 매화를 찾아 나서는 것'을 심매(尋梅), 탐매(探梅)라고 하며 풍류를 즐겼다.
조선의 선비요 문장가인 상촌 신흠 선생은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 노래했다.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이라며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같은 소리를 낸다며 오동을 불러와 매화에 대귀를 붙여 두 귀물을 아낌없이 칭송했다.
퇴계 이황 선생은 "매화는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는 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퇴계 이황은 자신의 저서인 ‘퇴계집’에서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고 부를 정도로 섬겼다. 오늘에 이르러 대구 중견 시인 두 분이 매화를 예찬한 매화타령을 소개한다.
매화 연가/황여정
(황여정 시/이안삼 곡) 대구 문인협회 홍보 국장. 대구 여성 문인협회 회원. 대구 문인협회 전부 부회장. 한국 예술 가곡 연합회 이사. 제1회 황유정의 시와 우리 가곡 발표. 202222 취직 내 마음의 다락방 저녁 안부 가곡음반 매화연가)
매화나무 옛 등걸에 봄바람이 불어오면
또다시 찾아 나서는 그때 그리움의 길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꽃눈처럼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해마다 새봄으로 피어나는 매화꽃 만나는 날
수백 년이 지나도 첫날처럼 환한 꽃이여
꽃향기 하도 맑아 눈을 감고 사무치네
수백 년이 흘러도
그날처럼 환한 꽃이여
꽃향기가 하도 맑아
눈을 감고 사무치네
아 아 꽃비 내리는 뜨락에 앉아
고요 속에 젖어 들어 하늘을 날아가면
복에 겨운 내 마음 출렁이는 봄빛이다
아아 꽃비 내리는 뜨락에 앉아
고요 속에 젖어 들어
하늘을 날아가면
복에 겨운 내 마음 출렁이는 봄빛이다.
매화/곽명옥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국제펜 문학회문장 작가회 회장(역)수필집 ‘그 초록을 다시 만나고 싶다’동시집 ‘신발장의 수다’포항 스틸 에세이공모전 수상)
입춘, 우수 지나니 매섭던 바람이 순하지만 가끔 끝이 맵다. 이쯤이면 생각나는 꽃. 봄의 전령사 매화이다. 모든 초목이 움츠리고 있을 때 서슴없이 꽃망울을 터트려 봄이 오는 설렘으로 희망을 주고 향기 또한 그리운 사람을 만난 듯 은은함이 배어있다. 때로는 꽃잎에 하얀 눈이 녹아내릴 때까지 버티며 피어있어 지조의 꽃이라고도 한다. 죽은 듯 딱딱한 까만 고목에 한 송이씩 드물게 핀 매화를 보노라면 자태 또한 단아하고 정갈하여 빳빳이 풀 먹여 세운 한복의 동정 같아 선비들의 고고함이 서려 있다.
매화는 산청 삼매와 도산서원의 매화, 창덕궁의 고매, 백강의 동매, 선암사의 고매 등 지역마다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고 매화에 얽힌 소재는 문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매화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흔하지 않고, 비만하지 않은 꽃잎과 활짝 피기 전 꽃봉오리로 있을 때 더욱 귀하게 여겼다, 홍매 위에 하얀 눈이 쌓인 여인네의 정갈한 자태, 차가운 달이 비추는 백매의 매무새는 더없이 고고해 보이는 선비의 모습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재가(朴齎家)는 매락월영(梅落月盈) 한시 한수로 찬사를 보낸다.
창 아래 매화 가지 몇 가지 뻗어있고 (窓下數技梅) /창 앞에는 둥근 달이 둥실 떠 있네 (窓前一輪月)/맑은 달빛이 빈 사립문에 흘러드니(光入空査)/남은 꽃이 계속해서 피어나는 듯하네(似續殘花發) 달빛을 머금은 매화의 자태는 그지없이 맑아 사람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준다. 이는 어딘지 모르게 근접할 수 없는 순결미를 느끼게 한다.
내가 매화의 매력에 빠진 날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설을 쇠고 대구에 오니 겨울이 다 간 듯 포근하였고 담장 안에 곧 피어날 봉긋한 매화 봉오리를 보며 봄이 온다는 설렘으로 그냥 스쳤다. 그날 밤 매서운 바람이 쌩쌩 불어 유리창을 뒤흔든 이른 새벽 연탄불을 갈아야 할 시간이다. 고향 떠나 동생과 자취하였으니 싫었지만, 도리가 없다. 부엌으로 나와 하얀 재를 떼 내고 까만 구공탄을 얹어 구멍을 맞춘 순간 낮에 본 매화 봉오리가 떠올랐다. 시린 손을 불며 부엌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파란 하늘에 차가운 달빛을 받으며 하얀 매화 몇 송이가 꽃잎을 피웠다. 낮에 본 매화가 아니었다. 처연하기보다 고요 속에 청초하게 당찬 모습을 보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열일곱 처녀는 그냥 울었다. 그날 느낀 감성이 아직도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매화는 봄이 오는 희망으로 꽃의 형이라 불리기도 하고 강인함으로 사군자 중에 으뜸이며 솔,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로도 불린다. 자기중심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현대인과 책임감 없는 정치인보다 옛 선조들의 불의에 당당하게 맞선 굴하지 않는 강직한 충절과 정의로움은 선비정신의 표상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고결한 자태와 그윽한 향으로 시인 묵객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