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명강] 윤여준의 ‘민주국가의 통치 리더십’
[명사들의 명강] 윤여준의 ‘민주국가의 통치 리더십’
  • 정양자 기자
  • 승인 2023.11.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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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 ‘비전·정책·관리·외교·인사·평화’ 갖춰야
많은 시민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강연에 참여해 질문하며, '통치 리더십'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정양자 기자
많은 시민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강연에 참여해 질문하며, '통치 리더십'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정양자 기자

대구 수성구립 범어도서관은 지난 11월 11일 김만용•박수년홀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민주국가의 통치 리더십’ 강연을 지역주민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실시했다.

윤여준 전 장관은 동아일보, 경향신문 기자를 지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공보수석 비서관 겸 대변인 등으로 세 분의 대통령을 모시며 9년간 근무했다. 이후 16대 국회의원, 제4대 환경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 정치 바라보기

우리나라에서 ‘정치’라고 하면 비판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국가를 유지하는 이상 정치를 떠나서 살 수가 없다. 국가 통치는 최고의 권리이기 때문에 정치가 뭔지 알고, 왜 그런지 원인도 살펴보고 해결방안도 연구해 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은 정치를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다. 통치라고 하면 권위주의적으로 느껴지나 민주주의를 운영하려면 거부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자칫 약화되거나 실종되면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유신 체제하에서 통치가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는 체제’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 통치 과정은 민주적으로

정치가 통치를 통해서 이루어지려면 국정을 수행하는 절차, 과정이 철저하게 민주주의적으로 돼야 한다.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 정치와 통치의 맨 꼭대기 정점에 있는 존재의 힘을 가지고 있다. 국가를 통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가 통치 능력을 서양 사람들은 스테이트 크래프트(State Craft)라고 했다. 직역하면 ‘통치술’ 즉 ‘통치능력’을 이르는 말이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으나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옛말처럼 정권은 잡는 것보다 다스리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중국의 당 태종은 ‘정관지치(貞觀之治)’에 통치한 기록을 남겼다. 이것이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수성을 얻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통치술이기에 그렇다. 우리나라는 민주화 이후에 수성으로 나라의 권력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대통령이 없어 아쉽다.

통치 능력의 구성요소에 대해 학자에 따라서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정치는 정치학자 수만큼 이론이 많다. 나는 학문적인 배경은 없지만, 시기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진 세 분의 대통령을 모시며, 비판하며 고민도 많이 했다. 경험적 견해에 따라 통치자의 여섯 가지 덕목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 통치자의 덕목

대통령은 먼저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에게 뭘 어떻게 하겠다. 국가가 처한 구체적인 현실 상황, 한반도 정세, 국내 문제 해결책, 세계 속 한국이 나가야 할 방도 등을 정리해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또 국가의 미래상을 국민에게 제시해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쉬운 과제는 아니다.

국민에게 분명한 국가적 비전을 제시한 역대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한 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감안해야 할 것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국민소득이 300불이 안 될 때였다. 비전으로 조국 근대화라는 기치를 들었다. 공직자에게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될 것을 요구했다. 기업과 대기업도 국민도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30년 만에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가 역사상 한국 밖에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다.

두 번째는 정책 능력이 있어야 한다.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서 정책을 만들고 실천하겠다는 것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비전을 실천하는 것 또한 어려운 과제이다. 정책은 만드는 능력과 실천하는 능력은 따로이다. 다양한 정책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공직자이다. 이해하고 동의해서 국민에게 실천을 설득하는 것 또한 어렵다.

세 번째로 중요한 능력은 제도 관리능력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정은 법과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법에 따라 실천해야 한다. 국정은 법과 제도에 의해 운영된다. 이 제도 관리 또한 중요하고 어렵다.

네 번째는 외교능력이다. 과거 영국의 대처 총리가 ‘중진 국가는 국가의 외교 능력의 운명을 정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외교가 중요하다. 대통령마다 해외로 나가서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국제회의도 가고 또 개별적으로 나라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는 이유가 그만큼 한국은 외교가 중요해서 그렇다.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는 것은 외유가 아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정상 외교 시대이다. 특히 한국 같은 경우는 불가피하게 안보와 경제 때문에 대통령은 외국을 자주 나가 정상 외교를 펼쳐야 한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인사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잘 쓰느냐, 또 좋은 인재 썼으면,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느냐 등 인사 관리가 중요하다. 대통령은 특정 분야에 좋은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분야마다 소수의 좋은 인재들이 있다. 전문지식을 갖춘 훈련 된 인재 중에서 가장 좋은 사람을 선택해 임명해야 한다.

공직은 대통령 개인이 주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이 주는 자리다. 직책 수행능력과 도덕성을 따져 적재적소에 임명해야 한다. 주변인들 위주로 인사를 하다 보면 국민들한테 신뢰를 잃게 된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들 인사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민이 그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니까 절대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여섯 번째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관리가 큰 부담이다. 다루기 까다로운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 어느 정도 맞춰서 쓸데없이 무력 도발을 하지 않도록 하면서 적당히 도와도 줘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언젠가는 같이 살아야 할, 같은 민족이므로 통일지향적으로 응해야 한다.

대통령은 여섯 가지 분야에 능력이 있어야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경험적으로는 생각했다. 한 사람이 현실적으로 여섯 가지의 능력을 다 갖출 수는 없다. 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인재를 등용해서 배치하면 될 것이다.

대통령직은 수직적 위계질서의 꼭대기가 아니다. 즉 동료 중 일인자이다. 옛날 임금 같은 존재가 아니다.

대통령은 국회를 지배하려 하면 안 된다. 국회를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입법권, 행정권은 나뉘어 있다. 국회는 여러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골고루 반영해 대변하는 기관이다. 그 의견들을 다수결에 따라 법률로 정하면 된다. 여당을 도구화하고,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인식하지 않으면 국가적 불행을 남길 수 있다.

국민들이 정치와 통치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물리적 규모는 큰 나라가 아니다. 국민 역량은 엄청스럽게 큰 나라다. 국민의 두뇌, 투지, 근면성으로 해낸 나라다. 머리를 모으면 국가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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